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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선 May 31. 2024

열심히 인생낭비 중

05/31 금 일기

01

포지션 제안을 받은 계약직 마케팅 보조역할에 지원하기 위해 자소서를 썼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공백기도 채우고 중견기업 경력기술서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업무강점/성격의 장단점/성장과정/지원동기


다른 사람들의 포맷을 따라서 작성해 보았고

돈 벌려고 지원했지 라는 마음을 꾹 누르고

그렇게 어렵던 '지원동기'도 그럴듯하게 썼다.


뭐 합격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자소서를 온전히 다 써봤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연습하면 좋은 기회가 오겠지.


현실에서 두 발자국 뒤쳐졌다 해도

나로서는 한 발자국 앞선 느낌이었다.


02

취미로 줄곧 가지고 있었던 인물 사진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땡볕에 장미와 함께 한 사진을 찍는다고 고생을 좀 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좋았고 멋져 보였다.

시쳇말로 도파민이 싹- 돌았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 세상에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활력을 주었다.

전에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한 톨의 여유도 없었는데

신기하고 가엾은 모습을 내내 돌아봤다.


04

주변인에게는 열심히 인생낭비 중이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건넸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건강해진 느낌이다.

(심지어 얇고 양이 없던 머리도 풍성해졌다 신기할 노릇)

나에게 맞지 않은 내가 결정할 수 없었던 가정사를 버리고 나와

온전히 나만 신경 쓰면 되는 환경에 놓였다.

내가 모두를 챙기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와

나를 위하고 이기적으로 살겠다는 생각이 날 숨 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효녀가 되었다는 느낌이 썩 불편했다.


이따금씩 뒤를 돌아 예전의 나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고 숨이 막힌다.

이제 그럴 땐 "죽고 싶은 거보다 중요한 게 있나?"라고 되물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만큼 나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건 없다.

취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불안한데 안불안하다

어떻게든 되지 않는 상황인데 어떻게든 될 거 같아서

불안장애였던 내가 여기까지 왔다.


주말에는 이번주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정하려 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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