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매, 반바지, 쪼리 신발을 신고 …
웹디자이너 B는 나이가 매우 어렸다. 1년 정도 다른 곳에서 일했다고 했지만, 웹과는 거리가 있었다. 웹보다는 상품 디자인 쪽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고민했지만, 면접 때 밝고 긍정적인 느낌이 좋았다. 포트폴리오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도보로 10분 남짓 소요된다는 게 가장 플러스 요인이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손이 빨랐다. 한 번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결과물을 주었고 집에서 멀지 않아 잘 적응하고 있는 줄 알았다.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수습기간이 끝날 때쯤 새벽 12시가 넘어 연락이 왔다.
생각해 봤는데 내일부터 출근을 못할 거 같아요.
전화로 하면 울 것 같아서 문자로 남겨요.
길고 긴 장문의 문자였다. 12시가 넘어서 온 문자에 답장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퇴사 하겠다고 하니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B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잠시 통화가능해?
통화가 불편하면 내일 이야기 나눴으면 해.
지금은 너무 늦었어.
12시, 새벽 1시를 넘어가는 시점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 최대한 좋게 말했지만, B는 나에게 계속 문자를 보냈다. 장문의 문자에는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해도, 알바가 아닌 정식 채용을 통해 일을 하는 상황에서 퇴근 후 밤에 퇴사 이야기를 하다니. 너무 책임감 없는 행동에 짜증이 났다.
심지어 B와 점심시간에 퇴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가 회사에 출근했다가 무단퇴사를 했다고 연락 왔다는 것이다. 본인의 친구지만 너무 무책임하다고 내게 말했다.
무책임한 친구를 욕하던 B가 밤늦게 연락해서 죄송하다며, 오늘부로 퇴사하겠다고만 했다.
결국 새벽 2시가 넘도록 문자 하다가 다음날 출근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오전에 오겠다고 했던 B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3시쯤 연락이 왔다.
사무실로 오라고 했지만, 밖에서 만나고 싶어 했다. 회사 근처 카페에 가서 대화를 나눴다. B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본인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긴 대화를 나눴지만 B는 관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확인했다.
관둘 거야?
내 물음에 고객만 끄덕인 B는 눈물만 흘렸다. 관둔다, 퇴사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눈물만 흐르는 B에게 나는 사무실 가서 사직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사무실에서 사직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마동석 같은 사람이 벌컥 사무실 문을 열었다.
한껏 화나고 짜증스러운 말투로,
야, 너 왜 안 와?
언제 갈 거야?
빨리 와.
누구세요?라고 내가 묻기도 전에 B의 아버지였던 마동석과 같은 남성은 B에게 화를 냈다.
B는 창피하다면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마동석 같은 남자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로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애가 퇴사한다는 말을 못 한다고 해서,
우리 애가 울기만 해서,
티브이나 직장인 블라인드에서 봤던 일을 경험했다. 정말 부모가 와서 우리 아이의 퇴사를 대신 말하다니.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그리고 문 앞에 있는 남성을 쳐다봤다.
민소매와 반바지, 쪼리 슬리퍼를 신고 있는 모습을 …,
사무실과 집이 가까운 거리라고 했지만 회사다. 딸이 당장 관둔다고 해도 사직서를 쓰고 회사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직원 아닌가. 격식까지 차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예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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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함께 B가 가고 웃음이 났다.
퇴사조차 본인이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부모가 대신해줘야 하는 …
많은 생각이 들었다. 5살, 6살 본인의 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유치원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무슨 일인가.
퇴사할 때 용기가 필요하다.
퇴사하고 싶은데 말할 용기가 없어요.
이미 퇴사하겠다는 마음이 확고하다면 비겁하게 부모님 뒤에 숨지 않아야 한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는 걸 원치 않아서 관두고 싶다, 관두겠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우물쭈물하지 않아야 한다.
어차피 관두면 얼마 안돼서 다 잊힌다.
하지만 아버지가 쫓아온 B는 오랫동안 기억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