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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Mar 07. 2022

출근길이 힘든 이유

놀이하는 인간과 출근하는 인간

월요일 아침, 오늘따라 지하철은 더 붐비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도 열심히 일 해야 하는데, 일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녹초가 됩니다. 골목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동기 김대리, 주말에도 출근을 했는지 몰골이 엉망이네요.


누구에게나 밥벌이는 고된 법이죠. 뭐든지 '일'이 되면 왠지 모를 거부감과 피로감부터 생기곤 합니다.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던 취미도 직업이 되면 전혀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도대체 일은 왜 하기 싫은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이상합니다. 일을 하면 몸이 피곤해지니까 싫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퇴근 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가는 헬스장은 즐겁습니다. 갖은 고생을 각오하고 떠나는 여행도 더할 나위 없이 즐겁죠. 봉사활동은 어떤가요? 누구보다 고되게 노동해도 기쁘고 즐거워요.


그런데 일은 그렇지 않죠. 왜인지 '그냥' 하기 싫습니다. 내가 너무 게으른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놀이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야, 김사원! 회사를 재미로 다녀? 일이 놀이야?" 


현대사회 속에서 '놀이'라는 어휘에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어요. 놀이는 진지하지 못한 것, '일'은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이죠. 놀이는 아이들의 영역이고, 어른들의 세계는 근엄하고 무거워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위징아는「호모 루덴스」에서 그 대립 구도는 지극히 최근에서야 생긴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문명의 본질은 놀이라고 말이죠. 진지함, 엄숙함 같은 태도는 딱히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원래 우리와 어울리지도 않는다고요.





하위징아가 말하는 놀이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행위와 목적의 일치 여부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와는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길거리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봅시다. 


"너희들 지금 그거, 왜 하고 있는 거니?" 


아이들은 대답합니다.


"네?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건데요?"


아이들이 하는 놀이의 목적은 놀이 그 자체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행위와 목적이 정확히 일치하는 상태입니다. 


아이들 장난에 의미와 이유를 물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놀이를 위한 놀이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콩나물시루 같은 지옥철을 견디며 출근하는 샐러리맨들에게 물어볼까요?


"혹시 선생님, 일을 왜 하시죠?" 


생계 때문에, 부양할 가족 때문에, 미래 때문에.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겠죠. 그러나 분명한 건, 이들의 출근에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위와 목적의 불일치 상태입니다. 진지함, 엄숙함, 그리고 고통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하고 싶은 일(목적)과 하고 있는 일(행위)이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현대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우리의 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진지한 일'이라는 개념은 인간에게 맞지 않은 옷이기 때문입니다. 「호모 루덴스」에 따르면 인간은 놀이하는, 놀이에 의한, 놀이를 위한 존재입니다.





고도의 산업발전에 따른 노동의 분업화, 체계화는 목적행위의 괴리를 심화시켰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일'은 놀이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죠.


어느 TV 생산 공장에서 일을 하는 박 사원은 본인이 만들고 있는 tv의 완성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파트에서는 하루종일 너트를 돌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그저 주어진 공정에만 골몰하게 됩니다.


사회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인간 소외'라고 부릅니다. 노동, 더 나아가 사람이 본질에서 멀어져 도구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직장인들의 출근길이 그토록 힘든 것도, 나의 일이 목적과 의미를 잃고 무의미하게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출근길이 뿌듯하고 행복하기 위해선 어떡해야 할까요? 


물론 현실적으로 생계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직장인들이 일을 놀이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선 회사 내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주도성을 갖는 게 가장 좋겠죠.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자체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목적과 행위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좁히는 것입니다.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이를테면 좋아하는 취미나 개인적인 목표, 가족이나 같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일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이죠.


일을 하는 이유가 단순하고 막연하게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이번 주말 사랑하는 사람과 멋진 식사를 하기 위해서고, 내년에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위한 투자가 되야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행위와 궁극적인 목표가 가까워질수록 일은 놀이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즐거워 지죠. 마치 아이들이 해맑게 장난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문명이 가지고 있는 필요 이상의 엄숙함, 본질을 잃은 진지함은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착각일지도 몰라요. 삶에는 그저 즐기는 것 이상의 어떤 거대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 착각 말이죠.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흩어지는 꽃잎을 줍는 아이들처럼, 그저 해맑게 즐기며 놀이하듯 살아가야만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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