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을 Aug 15. 2023

이별할 결심

머리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어렸을 때 내가 가졌던 오해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중 한가지로 이것을 말할거다.

"서로 안좋아하면 헤어지는 거고 서로 좋아한다면 헤어질 수 없다."



서로 좋아해도 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싸우지 않아도 헤어질 수 있다.

꼭 싸우고 어떤 일이 생겨야 헤어지는 건 아니더라.


그래서 난 결심이 필요했다. 우리의 관계를 위해 그것이 옳다는 것을 둘다 잘 알고 있어서 결심의 무게를 지기로 했다. 저번 글에도 말했다시피 우리는 장거리연애를 하고 있었고 서로를 참 많이 좋아했다. 그치만 나도 기말시험으로 힘들고, 그 친구도 경제적이나 학교 상황이 많이 안좋아지면서 우리 대화에서는 희망에 대한 얘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 친구를 위로하고 격려해줌에 기쁨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친구의 상황을 들어주기에 심적 여유도 줄고 듣는 나도 속상하고, 그저 이런 서로를 안아줄 포옹이 필요한데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매일매일 전화하는 것이 항상 기쁘지는 않았다. 전화를 받을 수 있음에도 전화를 받지 않고 화면에 뜬 그 이름을 계속 보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 결혼과 가정을 같이 그릴 수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싶고 그런 사람이라면 장거리도 이악물고 버틸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결혼을 꿈꾸지 않는다. 그리고 6월에 우리 집에 오기로 했던 그 친구는 살고 있는 곳에서 일을 하기로 해서 못온다고 얘기를 해주었고 듣자마자 내 마음은 많이 무너져내렸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게 2월 중순이었고 4월에 보자며 작별인사를 했던 것이 무색하게 우린 6월 약속을 잡았었다. 왜냐하면 말로만 4월에 보자고 했지 우리 모두 4월은 서로의 방학 시즌이 달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 순간의 절망을 느끼고 싶지 않아 애써 포장했었다.


그렇게 종강하고 6월에 보는 만남만을 계속 기다리며 이 시간을 꿈꿔왔었다. 4개월만의 만남이라니.

그치만 한순간에 나의 마음은 냉정해졌다. 그 친구는 일을 구하고 있었는데 일을 시작할 수 도 있다는 소식에 나는 너무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 그러면 6월에는 못 오는 거구나 하고 알았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어? 하고 물었고 그 친구는 아마 9월도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나는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6월 만을 기다리며 버텼는데 그것 조차 안된다고 하니 곪았던 것이 한순간에 터진 느낌이었다. 이 관계를 놓을 자신은 없었지만 우리 둘을 위해 누군가는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미래를 같이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여도 참 많이 사랑했고 눈 앞에 있으면 당장 뛰어가 껴안을 정도로 좋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 장거리 연애를 언제 만날지 모르는 불확실속에서 이어갈 자신도 없고, 감정 소모하기도 싫었다. 서로 만날 수 없다면 누군가는 결심을 해야 했고 나는 이번에는 내가 말을 꺼내기로 결정했다.


하루정도의 시간을 갖고 마지막 통화를 걸었다. 마지막까지도 얼굴을 보고 싶어서 페이스타임을 걸었다. 사실 그날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너가 6월에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에 대한 생각은 어땠어?' 라는 물음에 '부정적인 결과를 그렸지만 말은 안했다.' 라고 답을 해서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내가 악역을 담당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더 좋은 사람 만나길 소망하는 마음을 담아 우리는 여기까지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라고 말을 건넸다. 속으로 100번은 연습한 것 같다. 그 이어져오던 침묵을 깨고 입 밖으로 얘기하는게 얼마나 힘들던지. 입이 정말 안떼어졌었다. 그 결심을 하고 말을 꺼내기까지 참 무거운 결심을 해야 했었다. 결심의 무게가 그때 정말 크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많이 울면서 전화를 끝내는데 종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 '안녕' 이라는 말도 왜 이렇게 슬프던지. 이렇게 좋게 헤어졌던 적이 없어서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별을 선택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친구와의 연애를 떠올리면, 나의 모든 처음이 담겨있었다. 나의 첫 유학과 첫 국제연애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한 수많은 나의 첫 도전들.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던 말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물론 가끔은 그 친구가 그곳으로 떠나지 않았었다면..하고 상상해보지만 그건 그 친구의 선택들을 존중하지 않는 거니까 2초 상상하고 바로 중단한다.


다행히도 이별 하고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오고 또 스위스에 있는 친구들을 보러 여행도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있었어서 내 이별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불쑥 찾아오는 빈자리와 그 슬픔에 당연히 슬프다가도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위한 최선이었기에 덤덤했고 그 누구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안부를 묻고 그 사람이 잘 지내길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2달반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그 친구의 생일이 곧 다가왔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좋게 헤어진 사이이고 좋은 친구로 남은 관계니까 안부를 묻고 상황은 잘 풀렸는지, 생일 축하한다고 하면서 연락을 할까. 아니면 항상 그랬던 것 처럼,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바로 차단하고 연락을 안했으니 이 친구도 쭉 연락을 하지 않는게 맞는걸까..





흠.

나는 아주 깊은 고민에 빠져버렸다.  



우선 주어진 생활에 집중하고 바쁘게 일을 하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난 아직 결정도 못했는데 벌써 생일 당일 저녁이 되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3시간 가량 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