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오렌지 타운에서 마주한 나의 옛 그림자

by 김동관

산책을 나섰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오렌지 타운 거리를 걷는데 내 발길이 닿은 곳은 낡은 4층 건물 두동이 있는 허름한 유닛이었다. 이곳 4층에 37년 전 내가 은행융자 95프로 대출로 사서 1년 반 동안 살았던 '호주의 고향 집'같은 방 두 개짜리 집이 있다.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겠지 생각하며 잠시 망설였지만 난 어느덧 계단을 올라 4층 22번 집 문 앞에 섰다. 사실 10년 전에도 오렌지를 지나는 길에 이 집 앞까지 왔었지만 집에 아무도 없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었다.

집 안에 누가 있는지 노크를 해 볼까 망설이던 찰나,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젊은 청년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각오를 하고 말했다.

“실례지만… 37년 전 이 집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혹시, 잠깐 안을 들여다봐도 될까요?”

청년은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약속이 있어 오래는 못 있지만 잠깐이라면 괜찮다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 순간,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청년이었던 나는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왔고, 집은 여전히 그 자리, 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손수 페인트칠했었던 부엌 찬장과 낡은 코일 스토브만 바뀌었을 뿐, 집 안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맨 꼭대기 층 가장 끝에 위치한 집이라 내가 사용했던 작은 방은 큰 창문을 통해 집 앞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이 방 문을 열어 보니 갑자기 가슴에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오늘처럼 단풍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던 37년 전 어느 가을날, 누구를 그리워할 사람도 날 그리워해 줄 누구도 없던 그때, 책상에 앉아 물끄러미 창문 밖을 바라보았었다. 도로 앞 나무에선 나뭇잎들이 후드득 바람에 떨어지고 도롯가엔 떨어진 단풍잎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무도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에 유령처럼 혼자 있는 것 같은 공허감과 외로움이 들이닥쳐 며칠 동안 우울감에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외로움을 느껴보았던 기억이 몇 번 있다. 지방에서 살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와 대학 기숙사 방에서 지냈을 때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호주 땅에 와 이곳 오렌지 타운에서 혼자 살아가던 그 가을날 참 외로웠었다. 그 후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다시 아미다일 타운으로 이주해 기숙사에서 지낼 때 또 한 번 비슷한 외로움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여전히 새로운 일터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홀로 밥을 먹고, 홀로 걷고, 홀로 자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

왜일까?
어쩌면 나는 이제, 혼자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물론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이제는 다가올 노후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건강을 잘 유지해 가능한 한 끝까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늙어서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외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이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이번 가을부터는 매일 30분씩 맨손체조와 근력운동을 습관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가족들과, 오래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욱 진하게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 애쓰고 있다.

이번 겨울, 두 달 정도 타지에서 혼자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순간, 눈물 나도록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타지에 혼자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챙겨주는 아내의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고맙던지. 집에 돌아오면 달려와 내 품에 안겨 뽀뽀세례를 퍼붓는 작은 존재들이 내 마음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이들이 있기에 외로움이 틈타 들어올 자리는 없다.

37년 전 오렌지 가을의 기억은 오늘의 내 삶을 더 깊은 감사로 채워준다.

“네가 있어 내가 외롭지 않고, 네 존재가 있어 내 존재의 이유가 되니, 내가 널 더 사랑함이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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