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제2의 국가(國歌)
오늘도 나는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Swag 텐트에서 잠을 잔 후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잠들었는데, 어느덧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아침노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 한 잔에 삶은 달걀 하나, 그리고 땅콩버터와 아보카도를 바른 토스트 위에 얇게 썬 양파와 오이를 올려 아침을 때웠다.
그렇게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오늘의 목적지인 Mt Isa 일요 마켓으로 향했다. 브리즈번을 떠난 지 나흘째,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 출발해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삼일 내내 끝없는 아웃백 들판을 건너 달려온 길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작은 테이블을 펴고,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 팔아서 여행 경비를 벌 계획이다.
Swag 텐트는 내 여행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다. 스웨그 텐트만 있으면 비싼 숙박비를 내지 않고도 별이 쏟아지는 어느 평원 위에서도 잘 수 있다. 하루 이틀 Rest area에서 무료 숙박을 하고, 다음 날은 카라반 팍에서 텐트를 치고 샤워와 빨래를 한다. 이렇게 난 오늘도 조금은 불편하지만 자유로운 노마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 중 Mt Isa로 향하던 길에 처음 와본 Winton이라는 작은 타운에서 나는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그곳이 바로 호주인들의 마음속에 “제2의 국가(國歌)”로 불리는 "월씽 마틸다(Waltzing Matilda)"가 태어난 곳이었다. 호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함께 부르면서 호주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그 노래 말이다.
Winton Visitor Centre의 Waltzing Matilda 기념관을 둘러보며 나는 이제껏 막연히만 알고 있던 이 노래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를 썼던 시인 반조 패터슨( Banjo Paterson: 호주 지폐 $10에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음), 그에게 영감을 준 떠돌이 노동자들과 여인 크리스티나 맥퍼슨(Christina Macpherson),
그들이 이 노래를 완성해 간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1894년, 수년간 지속된 가뭄과 경기 침체 속에 목장주들은 양털 깎는 노동자(Shearer)들의 임금을 삭감했고 이에 항의하며 파업에 나선 노동 조합원들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노동자들 중 일부는 퀸스랜드 북서부의 Winton에 자리 잡은 Dagworth Station 목장에 모여 밤마다 불을 피우며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누군가가 Dagworth 농장 창고에 총알 한 발을 발사했고 목장주는 사람들을 모아 대치하며 20분간 교전을 벌였다. 교전 중 누군가 양을 모아둔 창고에 불을 질러 양털 20여 톤과 양 143마리가 불타는 사건이 있었다(현재 가격으로 약 20만 달러 피해 추정됨). 농장주들과 경찰은 방화자로 지목된 떠돌이 노동자 Samuel Hoffmeister(Frenchy라 불림)을 추적했고, 파업 노동자들은 대그워스 스테이션에 속한 호수였던 Combo Waterhole 옆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 있었다. 그때 독일 출신 떠돌이 노동자였던 Samuel이 일어나 주머니에서 편지를 한 장 꺼내 읽은 후 그 편지를 불속에 던져 넣고는 이렇게 읊조렸다. "That done. I'm satisfied. 다 끝났어. 난 만족해." 그리고 캠프에서 20미터쯤 걸어가서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 땅의 자유와 절망이 교차하던 한 시대의 초상이 되었다. (경찰을 데리고 형 Bob과 함께 사무엘을 잡으러 갔던 Dolald Macpherson도 나중에 죄책감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편, 1895년 1월 여름, 시드니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시인 반조 패터슨은 약혼녀 Sarah Riley를 만나기 위해 Winton 지역의 큰 양 목장이었던 Dagworth Station을 방문했었다. 이 목장은 사라의 학창시절 절친이었던 Christina의 오빠 Bob Macpherson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라가 이곳에 초대받아 묵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조는 여기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크리스티나는 몇 해 전 빅토리아주 워남불(Warrnambool) 경마장에서 들었던 스코틀랜드 행진곡의 선율을 지터(zither: 기타 음색을 가진 가야금 같은 악기)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잔잔한 현의 떨림이 방 안을 채우자,
반조 패터슨은 펜을 들어 전날 Bob에게 들었던 그 떠돌이 노동자 Samuel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크리스티나의 지터 선율 위에 한 단어씩 얹기 시작했다.
떠돌이 노동자의 노래,
자유를 향해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외침이 그의 시 속에 새겨졌다.
현실의 떠돌이 사무엘은 양털 창고를 방화한 혐의로 경찰에게 쫓겨 죽음을 맞았지만,
시인 반조는 그의 죽음을 '자유의 선택’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에게 ‘빌라봉’은 절망의 웅덩이가 아니라
속박에서 벗어나 영혼이 흘러 들어가는 자유의 강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Waltzing Matilda’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와 떠돌이들의 존엄과 해방을 노래한 시였다.
며칠 뒤, 크리스티나는 인근의 또 다른 가족의 목장이었던 Oondooroo Station으로 옮겨 그 멜로디를 피아노 위에서 다듬었고, Waltzing Matilda 노래가 완전한 형태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1895년 4월 6일, Winton의 North Gregory Hotel에서 퀸즐랜드 총리 Sir Hugh Nelson을 위한 만찬 자리에서 그 노래는 처음 불려졌다.
초원의 밤공기 속에서 울려 퍼진 월씽 마틸다 선율은 정치인도, 마부도, 떠돌이도 잠시 말을 멈추게 했다.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날 호텔의 불빛 아래서 불린 그 노래가
훗날 호주의 모든 심장에 새겨질 줄은.
이 노래는 단지 멜로디가 아니라,
이 척박한 붉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이고,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반조가 처음 친필로 썼던 Waltzing Matilda를 여러 날 동안 음미하며 한글로 번역해 보면서 나에게도 메고 다니는‘마틸다’가 있고 내가 그 떠돌이 노동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내려앉은 캠핑장,
쿨라바 검트리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나도 월칭 마틸다를 불러보았다.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누가 나와 같이 방랑여행 떠날까?
WALTZING MATILDA
By A.B. "Banjo" Paterson (wrote in1895) 번역 by 김동관
Oh! There once was a swagman camped in the billabong,
Under the shade of a Coolibah tree;
And he sang as he looked at the old billy boili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오! 옛날에 어느 떠돌이 노동자
빌라봉¹ 가에서 야영을 했다네
쿨라바² 검트리 그늘 아래 앉아
낡은 빌리³ 주전자에 물이 끓는 걸 보며 흥얼거렸지
“누가 나와 함께 마틸다⁴ 메고 방랑여행 떠날까?”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my darli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Waltzing Matilda and leading a water ba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누가 내 사랑 마틸다와 함께 방랑의 춤출까?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마틸다 메고, 물주머니 하나 들고서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Down came the jumbuck to drink at the waterhole,
Up jumped the swagman and grabbed him with glee;
And he sang as he put him away in his tucker-ba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양 한 마리 물 마시러 웅덩이에 나타났네
떠돌이가 벌떡 일어나 양을 붙들고 미소 지었어
자루 안으로 양을 밀어 넣고 노래했지
"나와 함께 방랑여행 가자구나"
Up came the squatter a-riding his thoroughbred;
Up came the policeman - one, two, three.
“Whose is the jumbuck you’ve got in your tucker-ba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곧바로 농장주⁵ 준마 타고 나타났네
경찰도 뒤따랐지 - 한 명, 두 명, 세 명
“자루에 든 양은 누구 거요?"
"나와 함께 방랑여행 가자구나"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my darli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Waltzing Matilda and leading a water ba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누가 내 사랑 마틸다와 방랑의 춤출까?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마틸다 메고, 물주머니 하나 들고서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Up sprang the swagman, and jumped into the waterhole,
Drowning himself by the Coolibah tree;
And his voice can be heard as it sings in the Billabo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방랑자 벌떡 일어나 빌라봉 속으로 뛰어들었어
쿨라바 검트리 옆 빌라봉에 빠져 죽은 거지
지금도 그의 노랫소리 빌라봉에서 들을 수 있어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my darli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Waltzing Matilda and leading a water ba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누가 내 사랑 마틸다와 방랑의 춤출까?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마틸다 메고, 물주머니 하나 들고서
누가 나와 함께 방랑여행 떠날까
참고
1. 빌라봉(billabong): 강물이 범람했다가 고여 생긴 고립된 물웅덩이. 호주 내륙에 있는 흔한 지형.
2. 쿨라바 나무(Coolibah tree): 호주 아웃백에서 자라는 유칼립투스(검트리)의 일종.
3. 빌리(billy): 야외에서 물이나 차를 끓일 때 쓰는 작은 금속 주전자.
4. 마틸다(Matilda): 떠돌이 노동자가 짐 보따리를 의인화해 부른 이름. “마틸다와 춤춘다”는 곧 ‘짐을 지고 방랑한다’는 뜻.
5. 농장주(squatter): 19세기 호주에서 대규모 목장을 차지해 양을 기르던 정착 농장주.
노래 영상
https://youtu.be/FqtttbbYfSM?si=0gNjPGq_d59OqD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