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달링

월씽 마틸다 - 두 여인의 슬픔

by 김동관

* Waltzing Matilda 비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 소설


월씽 마틸다 - 두 여인의 슬픔

By 김동관


1. 붉은 들판 위의 새벽


1894년 잔인한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새벽도, 황야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붉은 흙먼지 위로 구름 한 점 없던 하늘.

나는 언제나처럼 마구간 옆을 돌며 양들을 살폈다.

그들의 울음소리 너머로, 검붉게 물든 태양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이곳, Dagworth Station.

나와 동생 Donald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이었다.


도널드는 요즘 들어 눈빛이 자주 흔들렸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 때문에 매일이 긴장 속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이미 분노에 휩싸여 창고를 불태우겠다는 협박을 해왔고,

그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날 밤, 양털 창고가 불길에 휩싸이고,

양 143마리가 불타 죽었다.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는 것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Bob… 우리가 너무 몰아붙였던 건 아닐까.”

그날 이후, 도널드는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

며칠 뒤, 그 불을 지른 독일출신 떠돌이 노동자 Samuel Hoffmeister가 Combo Waterhole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의 품에는 메모 한 장이 남아 있었다.

"That done. I'm satisfied."

도널드는 그 장면을 직접 보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 손님이 찾아오다


몇 달 뒤,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시드니의 시인 Banjo Paterson이 나를 찾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내 오랜 친구였으며 Sarah Riley의 약혼자였다.

사라와 내 여동생 Christina는 학창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그래서 그의 방문을 흔쾌히 허락했다.

어쩌면 도널드의 어두워진 마음에도 바람 한 줄기 들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여름,

그들은 먼 시드니에서 이 황야까지 1,200킬로미터를 달려왔다.

먼지를 뒤집어쓴 마차에서 내린 사라는 여전히 밝았고,

잘생긴 반조는 어딘가 도시의 냄새가 났다.


저녁이면 넷이서 모닥불을 피워 둘러앉았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시골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 도널드는 말없이 불길만 바라봤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지터(Zither)를 꺼냈다.


“Warrnambool에서 들었던 곡이에요.

그날 이후 자꾸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요.”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선율은

스코틀랜드 행진곡 Craigielea의 멜로디였다.

경쾌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배어 있는 곡.

반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저 멜로디엔 자유가 있군요.”



3. ‘마틸다’의 밤


며칠 뒤,

나는 몇달 전에 우리 목장에서 일어났던 양털깎기 노동자들의 파업이야기를 반조에게 들려주었다.

그 떠돌이 노동자 사무엘의 죽음, 그가 남긴 쪽지, 그리고 내 동생 도널드의 죄책감까지.

나는 천천히, 기억 속의 장면을 되짚었다.

그는 조용히 들었다.

가끔 눈썹을 찌푸렸고, 가끔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모닥불이 거의 꺼져갈 무렵,

그는 노트를 꺼내 펜으로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옆에서는 크리스티나가 여전히 지터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흘렀다.

사라조차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Bob, 떠돌이의 이야기를 시로 적어봤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첫 구절을 내뱉었다.


“Oh! There once was a swagman camped by a billabong…”


그 순간,

불빛 사이로 반조의 눈에 스친 감정은

단순한 시인의 열정이 아니었다.

그건 크리스티나를 향한 어떤 미묘한 떨림이었다.


그녀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반조는 한 문장을 더 적었다.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my darling?”


나는 ‘my darling’이란 단어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을 느꼈다.

그건 약혼녀 사라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오빠로서,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라와 크리스티나도 느꼈을 것이다.


4. 세 사람, 그리고 하나의 노래


며칠 뒤,

그들은 Oondooroo Station으로 옮겨갔다.

크리스티나가 피아노 위에서 그 멜로디를 완성했고,

반조는 그 위에 시를 다듬었다.

노래는 완성되었다.

Waltzing Matilda.


그 곡은 단순히 한 떠돌이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건 자유와, 고독과, 사랑의 잔향이 뒤섞인 노래였다.

그 안에는 반조의 방황도,

사라의 상처도,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눈빛도 들어 있었다.


그해 4월 6일,

North Gregory Hotel에서 열린 주지사 만찬 자리에서 그 노래가 처음 연주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고,

노래가 끝나자 침묵이 흘렀다.

그때 반조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눈빛에는 기쁨이 아닌,

어딘가 부서진 그리움이 있었다.



5. 그 후의 이야기


사라는 시드니로 돌아가 약혼을 파기했다.

도널드는 그해 말, 총을 들고 외딴 언덕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크리스티나는 음악을 멈췄다.

그녀는 더 이상 지터를 켜지 않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도 드물었다.


반조는 떠났다.

그는 남아프리카 전쟁터로 향해 종군기자가 되었고 세계를 떠돌았다.

그후 이 땅을 찾는 일은 없었다.


나는 때때로 Combo Waterhole로 나가

물결 위를 바라본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잔잔히 흔들리며

누군가의 낮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그 노래 속엔 아직도

뜨거웠던 여름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시인의 방황,

여인의 상처,

그리고 남은 자의 죄책감.


나는 여전히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도널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 —

“Bob형, 나도 마틸다 메고 여행이나 떠날까.”



6. 에필로그 — 마틸다를 메고


세월이 흘렀다.

Winton의 황야엔 여전히 붉은 바람이 분다.

사라는 혼자 런던으로 떠났고 혼자 쓸쓸히 살다가 세상을 등졌고,

크리스티나도 세상과 단절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채 늙어갔다.

반조는 8년 후 결혼했지만 한 여자의 품에 머물지 못하고 전쟁터를 떠돌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세 사람은 아무도 이 노래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인연은 이렇게 끝났지만,

그 여름의 노래만은 남았다.

Waltzing Matilda.


그 한 줄의 ‘my darling’ 속에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잃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슬프게 지켜보았다.


지금도 밤이 되면,

쿨라바 나무 그늘 아래서 나는 낮게 중얼거린다.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Christina Macpherson
Sarah R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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