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에서 마주한 고통의 얼굴
오늘도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하루를 살아내셨다.
파킨슨 증후군을 앓고 있으셔서 지금은
스스로 몸을 옆으로 돌려 눕는 일조차 못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하시며,
작은 물병 하나 스스로 들어 올려 가져다 마실 수도 없다.
무엇인가 말을 하시지만, 그 말은 더 이상 알아들을 수도 없고, 얼굴을 찡그린 채 웅얼거리는 그 소리는 마치 세상에 대한 마지막 하소연처럼 들린다.
어머니는 열일곱에 시집와 여덟 명의 자식을 낳고 온갖 고생을 하셨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삶을 더 고통스럽게 했고, 아버지 또한 평생 원망을 들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가셨다.
결국 어머니는 나이 여든 하나에 파킨슨 증후군의 병을 얻어 89세 된 오늘까지도 원망을 못 버리고 육체의 고통과 함께 힘겨운 생을 이어가고 있으시다.
고통.
싯달타는 인생의 본질이 고통이라고 말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그리고 오온성고(五蘊盛苦).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끝없이 변하는 무상한 것들을 쫒고,
실체가 없는 '나'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고통 속에 살고 있을까?
생로병사.
생과 사는 경험할 수 없는 영역.
그것이 나에게 고통이 될 수는 없다.
죽음 이후의 세상을 믿지 않기에 두려움도 없고,
그로 인한 고통도 없다.
늙어가는 것은 깨달아가는 일일 뿐, 고통스럽지 않다.
생로병사 중 나에게 고통이 될 수 있는 것은
병들어 몸이 아프게 될 때와
병들어 몸을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어
최소한의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겪게 될 마음의 고통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겠다고.
애별리고.
내 인생에서 이 고통은 경험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나이가 가장 많으니,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의 고통은
내가 그들보다 먼저 떠남으로써 피하고 싶다.
원증회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원망할 사람도 없고,
날 괴롭힐 정도로 미워할 사람도 없으니
내가 누구를 만나던 그건 고통이 되지 않는다.
구부득고.
무언가를 꼭 얻어야겠다는 큰 욕망도
무엇이 꼭 되어야겠다는 커다란 야망도
나는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니,
무엇을 얻지 못함으로 인한 괴로움도 없다.
오온성고.
보고(색) 느끼고(수) 인식하고(상)
하려하고(행) 의식하는 (식)
다섯 가지 속성이 시간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무상'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것들로 인해 불현듯 일어나는 욕망과 화도 곧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고통이 내 마음을 사로잡진 못한다.
어머니의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원망스러운 마음에 집착해,
불평이 일상이 되었고
마음의 병이 오래되어 육신의 병까지 가져와
삶 전체를 고통이 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인데도
편안한 마음으로 쉼에 들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아들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찌릿 찌릿한
오온성고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