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연

작품 6편

by 김동관

백세 인생과 나 / 김광연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한때 유행했던 이 노랫말은 노령화 사회의 한 단면을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남자 81세, 여자 86세라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정부의 의료혜택이 좋아지면서, 우리는 이제 재수 없으면(?) 백세까지 산다는 농담을 주고받는 시대에 들어섰다.


중국의 사상가 공자는 바람직한 인생의 여정을 여섯 줄로 요약해 후세에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이야기할 때 그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공자가 살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평균수명이 60세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과연 그의 말이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대로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공자께서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하셨다(吾十有五而志于學). 그러나 요즘 세상은 어떤가. 제때 대학을 졸업해도 스무 살을 훌쩍 넘고, 재수 삼수를 하거나 군 복무까지 마치면 스물다섯이 된다.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밟는 사람은 서른이 넘어야 공부가 끝난다. 공자의 첫 구절부터 최소 20년은 상향 조정해야 현실에 맞을 듯하다.


서른에는 자기 인생의 중심을 세워야 한다(三十而立)고 하셨지만, 요즘 청년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각종 스펙을 쌓느라 숨 가쁘고, 자신의 의지보다 세상의 눈치를 더 보며 살아야 하는 세태 속에서 서른에 ‘자립’이란 말은 사치에 가깝다. 공자님의 말씀을 실현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마흔에는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四十而不惑)고 했지만, 오늘의 40대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입신양명을 이루느라 가장 치열한 나이를 보낸다. 경찰청 통계를 보니 범죄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도 40대라고 한다. 예전에는 20~30대가 많았다는데, 시대가 달라지니 공자님도 숫자를 고치라 하실지 모르겠다.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五十知天命)지만, 현실의 오십은 여전히 분주하다. 가족을 위해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때이고, 인생의 피로가 서서히 몰려오는 시기다. 우주자연의 이치를 헤아릴 여유는커녕 자신을 돌아볼 틈조차 없다.
바람직하기는 오십 후반에라도 하늘의 뜻을 어렴풋이 깨닫고, 예순이 되어 고집을 내려놓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일흔에는 무엇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내공을 쌓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길을 잘 가고 계신지 묻고 싶다.


어릴 적 마을에서 곰방대를 물고 의젓하게 앉아 계시던 육십 대 어른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은 욕심을 내려놓고 하늘의 뜻을 궁리하며 진리를 탐구하던 진짜 어른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칠십이 훌쩍 넘었건만, 여전히 철부지에 불과한 것 같다. ‘꼰대’ 소리만 안 들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목표 아닌 목표가 되었다. 나이 들었다고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아무리 정신 차리고 살아도 그대로 실현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다. 그러니 이 나이에도 철없이 사는 것이 꼭 내 탓만은 아니라고, 조심스레 변명해 본다. 만약 공자님이 이 시대에 계셨다면, 평균수명이 늘고 산업이 발달해 모두 바쁘게 살다 보니 세월만 흘렀음을 이해하시고 새 시대에 맞게 말씀을 고쳐 주시지 않을까.


혹시 나처럼 인생이 공자님 말씀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하는 분이 있다면, 그게 꼭 ‘내 탓’만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심기일전해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면, 우리에게도 폼 나는 어른이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칠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도 철이 안 들어 못 간다고 전해라.”



내 삶이 펼쳐진 땅 호주/ 김광연


캥거루 뛰어놀고 코알라 잠드는 대지
우리 가족의 꿈이 영글어 가고
내 삶이 펼쳐진 땅


여기가 나의 터전

사십 년 세월이네


넓은 들을 누빌 때 대자연은 나를 품어 주고
해변 물결 천 번 만 번 오갈 제
어느덧 내 인생도 황혼이구나


이 산하 대지 영원하리라
아, 아,
아내가 영원히 잠든 땅
내 목숨 다하면 그대 곁에 잠들리라





백수, 백조 시대/ 김광연


요즘 나는 백수로 지낼 때가 많다.


이제는 백수 생활에 제법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다. 시간 맞춰 씻고 챙겨 나가지 않아도 되고, 늦잠도 마음껏 잘 수 있다. 특히 아침 시간에 게으름을 피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점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졸리면 아무 때나 잘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을 여유 있게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요즘 우리나라에는 청년 백수, 아가씨 백수—우아하게는 ‘백조’라 부르기도 한다—아저씨 백수, 아줌마 백수, 할머니 할아버지 백수까지, 그야말로 백수가 대세인 듯하다. 예전에는 백수가 비난의 대상이었고 못 할 짓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은 자의적 백수와 타의적 백수의 구분도 흐릿하다. 누가 누구를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도 아니다.


백수는 열등한 상태가 아니다. 생각해 보라. 우리 옛 선비들 대부분이 백수였다. 과거에 급제하면 관직에 나갔지만, 많은 이들이 자발적 백수로 책 읽고 글 쓰며 지냈다. 백수의 역사는 깊다. 소크라테스도, 공자와 맹자도 취직해서 돈 벌어 본 적 없는 진짜 백수들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일은 노예가 하고 시민들은 목욕탕에 모여 놀기만 했으니, 그야말로 백수 천국이었다. 사람은 본디 노는 것을 좋아한다. 백수를 꿈꾸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앞으로 IT의 고도화와 빅데이터, AI 인공지능의 발달로 생산시설은 점점 자동화될 것이고 백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청년 백수가 많아질 듯하다. 사실 나는 청년들 일자리 걱정보다 내 걱정이 더 앞선다. 요즘 백세 시대라는데, 재수 없으면 앞으로 삼십 년을 더 백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앞서 백수의 장점을 늘어놓았지만, 무료함도 만만치 않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금세 싫증을 느끼는 편이라,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어느새 일거리를 찾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백수에게 어울리는 일이라면 낚시, 골프, 친구들과 만나 밥 먹고 노닥거리는 정도일 것이다. 나름 재미있다. 그러나 어제 한 일을 오늘 또 하고 며칠 계속하면 금세 흥미가 사라진다. 무언가 생산적이지 않으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백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누구는 사회봉사를 열심히 한다고 한다. 심심풀이로는 괜찮겠지만 백수 탈출의 묘수는 아닌 듯하다. 백수로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거기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를 들어 잡문이나마 글을 쓰며 수입이 생긴다면 꽤 괜찮을 텐데, 그게 바로 소설가나 수필가 아닌가. 하지만 내 역량이 거기까지일지는 자신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서, 하고 싶은 일 중에서 돈이 되는 일은 정말 없는 걸까.


요리하기를 즐겨, 맛있는 것을 만들어 식구들과 지인들에게 먹여 보곤 한다. 맛있다고 하면 “맛은 알아가지고는…” 하며 농담을 하지만 속으로는 꽤 뿌듯하다. 그러나 돈이 되기는커녕 재료비만 들어가니, 백수 주제에 자주 할 짓은 못 된다.
백수로 지내다 보니 일정한 수입이 생기는 일은 정녕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수 상태는 유지하면서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렇다고 백수에게도 자존심이 있는데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백수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백수는 앞날이 창창하다.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이 될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니, 여러분, 백수를 업신여기지 말자.


그건 그렇고, 당장 내일은 또 무얼 하며 지내나.
백수의 원초적인 걱정거리가 오늘도 슬며시 앞선다.



안사돈이 사 준 빤스/ 김광연


‘슬하의 자녀’란 부모의 무릎에 앉혀 키우는 자식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젖먹이 때부터 숨결까지 느끼며 온 마음으로 돌본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나 아이는 자라고, 어느 순간 엄마 품을 떠난다. 요즘은 조기유학이 흔해져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어린 나이에 아이를 멀리 보내는 집도 많다. 그러면 슬하는커녕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식이 커 간다.


안사돈의 경우도 그렇다. 중학생이 된 아들을 외국으로 보내 공부시키느라 일 년에 한 번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훌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만 했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들은 장성했고, 해외에서 홀로서기를 하느라 부모 곁을 더 멀리 떠났다. 그래서인지 안사돈은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푸념하신다. 아들이라기보다 잘 아는 해외동포 같다는 말씀까지 하신다.


아들은 슬하를 떠난 지 오래고, 제 나름대로 새 가정을 꾸리느라 부모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안사돈은 자식에 대한 애틋함을 놓지 못해 김이며 미역, 아들이 좋아한다는 젓갈까지 수시로 보내신다. 아직도 무릎에 앉혀 키우던 그 마음 그대로 사랑을 건네고 계신 셈이다.
얼마 전에는 갖가지 먹거리와 함께 속옷까지 챙겨 보내오셨다. 사위는 체격이 큰 편인데, 보내온 것을 보니 아들이 어떤 치수를 입는지 가늠하기 어려우셨던 모양이다. 결국 위아래 속옷이 모두 맞지 않아 내 차지가 되었다.


그 물건들을 받아 들며 사돈네 형편이 괜히 짠하게 느껴졌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키웠건만, 슬하를 떠난 자식은 이제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렵다. 외국 땅에서 어느덧 며느리의 남편이자 장인어른의 사위로 살아가고 있으니, 사돈 입장에서는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둔 심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남의 새끼인 줄 알면서도 품어 기르는 형국이다. 그러나 내 자식 네 자식 가릴 것 없고, 내 부모 네 부모 따질 것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 사위도 늘 내 자식이라 여기고 있다.


속옷을 입을 때마다 아내에게 “나는 안사돈이 사 준 빤스를 입는 사람이오” 하고 히히덕거렸더니, 민망하니 그런 말은 절대 밖에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 말을 해 주던 사람은 이제 곁에 없고, 그래서 이렇게 회원님들께만 슬며시 털어놓는다. 그래도 딸에게도, 사위에게도 ‘안사돈이 사 준 빤스’라는 말은 차마 못 한다. 안사돈께는 보내 주신 덕분에 잘 입고 있다고, 더더욱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




걍(그냥) 세대/ 김광연


“왜 그랬어?”
“걍—.”
“회사는 왜 그만뒀어?”
“걍—.”
“그 사람은 왜 좋아해?”
“걍—.”
“왜 결혼 안 해?”
“걍—.”
“그 남자랑은 왜 헤어졌어?”
“걍—.”


요즘 30~40대의 대화법이 이렇다고 한다.
‘그냥(별다른 이유 없이)’의 구어체 줄임말인 ‘걍’ 한마디로 모든 대답이 끝난다. 마치 세상일을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선문답 같다.


우리가 서 있는 지구는 감각으로 보면 평평해 보이지만, 진실은 둥글다. 태양이 매일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적 사실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다. 예로부터 선지자들은 사물의 이유를 탐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실과 진실을 밝혀 왔다. 그 과정 속에서 인류 문명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에 비해 이른바 ‘걍 세대’는 감각과 느낌에 기대 살아가는 듯하다. 한 꺼풀만 벗기면 진실이 있음에도 과학적·철학적 사고의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지 않는다. 이유와 배경을 묻기보다는 순간의 기분과 감정에 의지한다. 이런 태도가 혹시 묻지 마 투자, 몰빵, 극단적 선택 같은 위험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예술과 예능의 차이를 떠올려 본다.
예능은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예술은 깊이 생각하고 몰입할 때 비로소 기쁨이 열린다. 그런데 ‘걍 세대’는 이런 사유의 세계를 번거롭게 여기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다. 과학적 사실보다는 감정적인 구호가 앞섰고, 차분한 검증보다는 즉각적인 분노가 더 큰 목소리를 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무엇이 사실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역사는 언제나 냉정하다.


50년 전에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산업화 시대의 7080 세대는 경제 성장을 위해 휴일도 잊고 일했고, 민주화 시대의 5060 세대는 투옥과 희생을 감수하며 자유를 넓혀 왔다. 시대마다 넘어야 할 산이 있었고, 그 무게만큼 사람들은 단단해졌다. 그러나 지금의 3040세대는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인생의 고단함을 몸으로 겪기 전에 ‘파라다이스’를 먼저 꿈꾸는 건 아닐까.
하지만 세상살이는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린다.
그 고달픔을 견뎌 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파라다이스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나이에, 우리는 너무 쉽게 “걍” 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정보가 뜨고, 손가락 몇 번이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배달되는 시대다.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은 보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수고와 시간은 쉽게 지워지고, 오직 “내 마음대로 되느냐, 안 되느냐”만 남는다.


우리나라는 이미 중진국의 최상위에 이르렀고, 이제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때 필요한 정신은 즉각적인 감정 반응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와 객관적 판단이다. 선진국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이제는 깊이 생각하는 세계관을 길러야 한다.


주위가 평평해 보인다고 지구가 평평한 것은 아니다.
‘걍’ 감각과 느낌만으로 살아간다면 진실과 사실에 다가가기 어렵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아침 해는 지구의 자전 때문에 뜬다”는 단순한 진실을 이해하려는 자세, 그 작은 출발이야말로 국민소득 5만 불 시대를 앞당길 정신일 것이다.



마음소/ 김광연


당신이 부리는 소 한 마리, 말 잘 듣고 있습니까?
이른 봄, 씨를 뿌리기 위해 농부는 쟁기를 달고 소를 몰아 밭을 갑니다. 소가 주인의 말을 잘 들으면 일은 수월하게 끝나지만, 소를 가는 대로 그냥 두면 밭갈이는 금세 엉망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 마음’이라는 한 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소를 잘 부리고 있을까요?
소를 부리려면 고삐를 단단히 잡아야 합니다. 느슨하게 잡거나 놓아 버리면 밭은 흐트러지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밭, 곧 심전(心田)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목적한 대로 밭을 갈기 위해 고삐를 조이고 소의 방향을 살피듯, 우리 마음도 늘 살피고 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소가 날뛰기도 합니다. 괜스레 심술이 일거나, 화가 치밀어 오를 때입니다. 그럴 때 주인은 얼른 고삐를 찾아 당겨 소를 진정시켜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마음소의 고삐를 잘 잡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그런 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갑니다. 또 어떤 이는 고삐를 쥐고 있으면서도 소를 다루는 법, 곧 심법(心法)을 모릅니다. 마음이란 붙잡으면 있는 듯하지만, 놓아 버리면 실체가 없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소의 존재를 아는 일, 그리고 그 고삐를 다루는 법을 익히는 일일 것입니다.


이 소는 분명 내 소입니다. 오직 나만이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이 소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예를 들어 딸과 한집에 살다 보면, 보기에 불합리한 점이 눈에 들어와도 말을 삼키게 됩니다. 벽에 시계 하나 달자고 제안했더니 “휴대폰 시계 보면 되지, 굳이 필요 없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사소한 일로 의견이 부딪히다 보면 말이 길어지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애초에 마음소가 그 방향으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고삐를 당깁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수렁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마음소가 예민해지고 난폭해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며 뿔로 들이받으려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고삐를 단단히 움켜쥡니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일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남의 소를 내 마음대로 부려 보려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소조차 온전히 다스리지 못하면서, 남의 소까지 원격 조정하려는 셈입니다.


내 마음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선 고삐부터 찾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