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록키의 심장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꼭 가봐요

by 워케이셔너

필라델피아에서 진행된 전체 부서 미팅에 참여했다. 정말이지 다이나믹한 사람들과 다이나믹한 미팅을 했다. 나의 수면 패턴도 다이나믹했는데, 사실 이 이야기는 다음주에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현대미술 속으로 들어가다

리딩 터미널 마켓에서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먹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계단 위로 올라가 뒤를 돌아보니, 도시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록키가 뛰어올랐던 바로 그 계단 (Rocky's Steps)이라 그런지, 괜히 숨이 조금 가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는 시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그림들 사이에서 묵직한 소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현대미술 전시관으로 향하면서, 이름을 들어본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쌓였다.


후안 미로 – 기호 같은 꿈의 조각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후안 미로의 작품들이었다. 캔버스 위에는 단순한 선과 점, 상징 같은 형체들이 툭툭 놓여 있었다. 처음 보기에는 장난스러운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아이가 꿈속에서 본 것들을 서툰 언어로 설명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 하나, 점 하나에 불필요한 것이 없어 보였고, 그 사이사이의 여백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도 이런 기호들이 떠다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로의 그림은 조용히 스며들었다. 화려하게 감탄을 자아내는 대신, 천천히 안쪽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살바도르 달리 – 현실이 녹아내리는 풍경

그 다음으로 마주친 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었다.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수없이 봐왔던 그의 화면이 실제 크기로 눈앞에 펼쳐지자, 그림 속 시간감각이 이상해졌다. 시계가 녹아내리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뒤틀린 풍경 속에서, 눈은 계속해서 화면의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달리의 그림은 일종의 퍼즐 같았다. ‘이건 뭐지?’ 하는 질문이 그림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해하려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아,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하는 체념 섞인 자유가 찾아온다. 현실이 조금씩 녹아내리며 모양을 잃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필라델피아라는 도시도 잠깐 꿈속의 무대로 변하는 듯했다.


르네 마그리트 – 익숙함을 낯설게 만드는 힘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다. 파이프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던 유명한 작품에서 느낀 그 이질감이, 다른 작품들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났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들인데, 배치와 조합이 달라지는 순간 낯설고 불안해진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눈을 되묻게 만든다. ‘내가 보는 게 정말 진실일까? 이름 붙이는 순간, 그건 이미 다른 것이 되는 건 아닐까?’ 그림을 보다가 문득, 우리가 필라델피아라는 도시를 오늘 하루 얼마나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지도 떠올랐다. 반나절 여행자의 시선이란 결국, 마그리트의 그림 속 사물처럼, 표면만 훑고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이름들, 낯선 실물의 존재감

피카소와 프리다 칼로, 그리고 다른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 공간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었다. 교과서와 책,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았던 이름과 그림이지만, 실물 앞에 서면 전혀 다른 종류의 무게가 느껴진다. 붓자국, 색의 두께, 캔버스의 크기 같은 것들이 사진으로는 도저히 전달되지 않는 층위를 만들어냈다.

특히 프리다 칼로의 작품 (칼로 본인, 부모님과 조부모를 핏줄이 달린 풍선으로 표현한 작품) 을 마주할 때는, 강렬한 색감과 동시에 묘하게 단단한 침묵이 느껴졌다. 마치 작가 본인이 화면 밖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압도감.

록키 동상 앞, 장난 반 진심 반의 권투 자세

첫 목적지는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 록키 동상이었다. 박물관 언덕 아래쪽에 서 있는 동상은, 생각보다 작지도,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크지도 않았다. 어느 영화 속 장면에서 그대로 뛰쳐나온 듯, 두 팔을 높이 치켜든 록키의 포즈는 조금 진부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동상 앞에는 한 드랙퀸 아저씨가 계셨는데, 우리보고 앞에 서 보라 하더니 마치 포토그래퍼처럼 우리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게 한다.

..동료와 서로 눈을 맞추다, 자연스럽게 장난이 시작됐다. 어쩔 때는 록키처럼 두 팔을 번쩍 들고, 다른 한 번은 복싱 자세로 주먹을 움켜쥐고 다가가 시늉만으로 슬로모션 “맞는 연기”를 했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관광객들도 피식 웃으며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었다.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나니, 단순한 장난 이상의 기분이 들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빡빡한 일정에 쫓기는 출장이었는데, 잠깐이나마 ‘관광객’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듯한 묘한 휴가감이 스며들었다.

Reading Terminal Market,

기름기와 소음 속의 치즈스테이크

앞서 말한, 점심을 해결한 곳은 Reading Terminal Market. 오래된 실내 시장 특유의 공기가 있었다. 천장에서는 철제 구조물이 삐걱거리며 내려앉을 듯 걸려 있고, 좁은 통로에는 사람과 냄새와 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어디선가 갓 구운 프렛즐 냄새가 나다가, 한 발짝 옮기면 해산물 비린내, 또 다른 쪽에서는 달콤한 베이커리 향이 섞여 들어왔다.

목표는 하나였다.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 줄이 제일 긴 Uncle Gus' Steak 가게를 골라 주문했는데, 철판에서는 이미 수많은 고기들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잘게 썬 소고기가 기름을 머금고 사각사각 볶여 나가고, 그 위에 치즈가 아낌없이 올려졌다. 치즈가 녹아내리면서 고기와 뒤엉키는 순간, ‘이건 무조건 맛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따끈한 샌드위치를 들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 바삭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게 맛을 감싸는 빵과, 기름기 가득한 고기, 짭짤하고 진득한 치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건강과는 잠시 결별하는 맛이었다. 동료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필리 치즈스테이크, 필리 치즈스테이크 하나 보다”라고 중얼거렸다.

시장 안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그 와중에도 치즈스테이크 한 입 한 입이 도시의 첫인상을 또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 여긴 좀 정신없고, 기름지고, 그리고 맛있는 도시구나’라는 생각.

반나절의 도시, 오래 남는 장면들


미술관을 나와 다시 계단을 내려오며, 록키 동상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아까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관광객들이 서서, 우리처럼 장난스럽게 권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Reading Terminal Market의 소음과 기름 냄새, 치즈스테이크의 묵직한 맛, 그리고 후안 미로와 달리, 마그리트의 화면이 뒤섞여 머릿속을 천천히 떠다녔다.

도시를 온전히 안다고 말하기엔, 필라델피아에서 보낸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하지만 록키 동상 앞에서의 어설픈 복싱 자세, 시장에서 허겁지겁 먹었던 치즈스테이크, 그리고 현대미술 전시에서 마주한 낯설고도 익숙한 그림들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을 것 같은 장면들이다.

반나절 동안 나는 필라델피아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도시가 가진 여러 결을 잠깐씩 손끝으로 쓸어본 느낌은 받았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오늘과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되겠지만, 그때도 아마 이 오후를 떠올리며, 미로의 점과 선,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마그리트의 묘한 그림들을 다시 한 번 찾아가게 될 것 같다.

“짧았지만, 이상하게 진하게 남는 도시였다.”
그게 이번 필라델피아 반일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를 문장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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