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설*

이행과 역행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지금:

by 서리달

가부좌를 반쯤 틀고서 의자에 앉아, 문장의 배열과 조립 따위를 고민하는 오후가 길어진다. 손가락의 위치로는 키보드 위가 알맞을 텐데_ 왼손은 시간을 먹고 자라난 머리카락의 갈라진 끄트머리를 매만지는 중, 오른손은 세 번째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걸고 있지.


언뜻 대륙 어딘가에 있다는 삐딱한 자세의 관음보살상이 떠올랐지만, 나의 마음은 보살의 마음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열十의 반절을 깨우친 듯이 세상을 바라보고 들어주겠다는 자비보다는 뭐라고 할까. 하나의 다음이 둘이 아닌 열이었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음에 더욱 가깝겠지.


어리석음에 조급함이 더해지면

운동량은 감소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모니터 앞에 꽤나 오래 눌러앉아있었음에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문장을 지어내지 못한 것이겠지. 마침 비틀려진 골반으로부터 뻑적지근한 감각이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자세를 고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더 이대로 앉아있기로 작정한다. 가부좌를 반쯤 틀고서 의자에 앉아, 문장의 배열과 조립 따위를 고민하는 낭비만 늘어간다.


어쩌면 이런 꼬락서니인 나 또한

좌선을 하는 수행자 같은 모습일까.


아마도 그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어리석음에 조급함이 더해져 운동량은 감소했을지 몰라도, 두 손은 비슷비슷한 위치를 자꾸만 전전하는 중이니까. 고요히 앉아서 참선하는 수행자들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겠지. 왼손은 시간을 먹고 자라난 머리카락의 끝을 매만지다가, 아까 내렸던 커피가 담긴 하얀색 머그잔을 들다가 내려놓았다가 다시 허공을 맴도는 중이니까. 오른손은 담배와 라이터를 번갈아서 잡는 느린 운행을 반복하는 중이니. 아무래도 이런 나를 두고서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을 거다.


언뜻 대륙 어딘가에 있다는 삐딱한 자세의 관음보살상이 떠올랐지만, 나의 마음은 보살의 마음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열의 반절을 깨우친 듯이 세상을 바라보고 들어주겠다는 자비보다는 뭐랄까. 지금을 모면하고 마주한 다음에 내가 바라는 모든 게 머물러주길 바라는: 어리석은 조급함에 더욱 가까웠으니까. 꽤나 오래 눌러앉아있었음에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문장을 지어내지 못한 것이겠지.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다가, 우리에게 남아있는 ‘다음’이 얼마 남지 않았단 사실을 짐작했다. 언제나 그대로일 순 없단 것쯤은 아는데 그래도 조금 더, 그대로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짐짝처럼 느껴지는 찰나였다. 다른 길을 고르지 못할 처지에겐 동행의 뜻이 너무나도 서글펐다.


언젠가는 끝날 거란 사실을 염두에 둔 채로 어울리는 듯해서일까. 동행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고, 그 의미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단맛이 나오거나 하진 않았다.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는 녀석의 어깨가 넓어 보였다. 오래 전의 왜소했던 어깨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내 눈에는 낯설게도 보였지. 벌써 이만큼의 시간을 어울렸단 사실에 나직이 기뻤지만, 벌써 이만큼씩 커버린 우리라서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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