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석사 1학기, 손톱만큼의 기대도 남지 않은 나를 어쩌면 좋지?
영국 석사는 급하다. 많은 이들이 영국 석사 유학을 만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반려하는 편이 좋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길을 잃기 때문이다. 완벽한 지도를 손에 쥐고 길을 잃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것이 영국 석사를 시작하는 우리의 운명이다. 그러니 혹여 “영국석사”라는 키워드를 통해 내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면 우선 본인에게 물어보시라. 도무지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공부를 더 하고 싶은가. 아직 세상에 뛰어들기에는 당신의 두 날개가 너무 여려서 학교의 울타리 안쪽에 남고 싶은가. 만약 둘 중 하나라도 본인에게 해당한다면 애정을 담아 말씀드린다. 석사 유학이 다가오는 삶의 기로를 맞이할 순간을 잠시 유예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허나 강의실에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을 절로 키워주지는 못한다. 석사를 시작하고 깨달은 한 가지는 내가 울보라는 점이다.
영국의 학제는 우리나라 학제와 완전히 다르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1년은 총 3학기로 나뉜다. 학교에 따라 학기 구성은 다르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Michaelmas (1학기: 9월 말 - 크리스마스), Lent (2학기: 1월 - 이스터), 그리고 Summer (3학기: 4월 - 6월) 세 학기로 일 년의 챕터를 나눈다. 미클마스 텀과 렌트 텀에는 수업을 듣고, 서머 텀에는 시험을 치른다. 이후 6월부터 담당 멘토와 면담을 통해 논문 주제를 구체화한다. 8월에 완성된 논문을 제출하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석사과정을 마무리한다. 수업과 과제에 치이며 하루하루 근근이 메우는 삶을 살다 보면 렌트텀이 끝날 때쯤 완전히 길을 잃은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모두 "뭘 써야 좋을지 모르겠어." 하며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다행인 것은 길 잃은 어린양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 나 홀로 천치가 아니라는 안도감.
첫 학기의 사정은 영 다르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때 나만 500m쯤 뒤에서 납덩이를 잔뜩 달고 버거운 발을 딛는다. 1 세계 대학에는 날고기는 전 세계의 수재들이 모여든다. 그곳에 풍경의 일부로 내가 녹아든 다는 최초의 감각은 부정이다. 으레 그렇듯 자기 검열은 교정에 첫발을 들인 순간부터 시작된다. 건물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어. 내가 여기에 어울릴 리가 없잖아.” 도망가고 싶어 진다. 숨고 싶고,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결제하고 싶다. 다들 영어는 왜 이리도 잘하고, 교수의 질문에 대답도 막힘없이 하는지. 나만 바보라는 수치심이 한도 끝도 없이 밀려든다.
나는 오래전 이미 흑역사 한 장을 써 내린 일이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보기 좋게 외국어고 입학에 실패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입시이니 놀라는 게 되려 부끄러울 결과였다. 헌데도 그 패배의 맛은 열여섯의 콧대 높던 내게 짙고 길었다. 대뜸 고교입시를 완전히 거부하고 나선 무대포 딸에게 내 엄마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중국행을 제안했다. 돌아보면 나는 그저 분수를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노력할 마음은 없으면서 좋은 것은 죄다 가져보고 싶은 버릇없는 애였다. 한부모 가정의 빠듯한 살림이라 누릴 것을 못 누리게 한다는 엄마의 죄책감과 눈치 없이 허황된 꿈을 꾸는 정신 나간 딸의 고집이 만나 내 인생 첫 유학길에 올랐다.
베이징에 도착한 뒤 나는 식욕을 완전히 잃었고, 웃지 않았다. 2주라는 짧은 시간 사이 5Kg가량을 잃었다. 쇠창살 이 촘촘한 기숙사 방에서 저무는 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울고 불고 야단을 떠는 딸이 마음에 아린 엄마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매해 나를 집으로 돌려놓았다. 익숙한 풍경의 일부로 귀환하고 보니 몰려드는 것은 패배감이었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 입시에 한 번 실패했고, 그 길로 떠난 유학길에서도 남사스러울 만큼의 시간을 간신히 버티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먼 곳의 책상 앞에 앉은 내게 그날의 쓰고 떫은 기억이 한여름의 열대야처럼 불쾌하게 끼친다. “그래, 내 까짓 게 뭐라고. 뭐 하나도 스스로 버틸 힘이 없는 모지리. 루저.” 그런데도 수치는 얼마간 삶을 추스르고 버틸 악다구니를 준다. 이번에도 다시 돌아가면 나는 평생을 밥버러지가 될 것이므로. 배주머니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할 아기 캥거루로 할머니가 될 것이므로. 다시 한번 느슨해지는 마음의 끈을 조였다. 영영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스스로를 미워하며 늙어갈 것이 두려워서.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움직여 주면 사는 일이 고돼도 견뎌갈 텐데. 역시 좋은 것은 좀 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는 수강신청에서부터 끊임없이 아찔했다. 내 학교는 첫 학기 첫 주에 일 년 치 들을 수업을 일괄 수강신청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포털에서 전공필수과목을 제외한 선택과목 여섯 개 정도를 선택해 신청해야 했는데, 돌이켜보면 지금도 관자놀이가 찌릿하다. 선착순이나 학년순 배정이 아닌 수업신청 소명서를 작성해야 했던 것이다.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이 본인이 해당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300자 내외로 정리해 포털에 올린다. 해당 과목을 운영하는 교수는 수업과 학생의 적합성을 판단해 자리를 내어줄 여부를 결정한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막아볼 틈도 없이 밀려든다. 한 글자도 쓸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나는 대학원 입학을 위해 아이엘츠 시험을 치르던 때 말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에세이를 영어로 작성해 본 적이 없다. 에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간단한 자기소개를 300자 남짓 쓰는 일이 그리도 어려울 일이던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이 흘렀다. 간신히 한 과목 신청서를 제출하고 보니 한숨이 난다. 도무지 일 년이 간의 마라톤을 완주할 자신도, 엄두도 나질 않는다.
같은 석사 프로그램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오전에 이미 신청을 끝냈다는 친구. 몇 과목은 이미 승인되었고, 듣고 싶은 과목 시간대가 겹쳐 고민하는 친구. 그 볼 멘 소리가 내게는 사치였다.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무슨 단어를 써야 하는지, 내가 쓰는 글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지 몰라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야어여오요’ 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애가 대단한 행정착오로 이곳에 왔다는 말뿐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모르길 바랐다.
첫 수업은 눈을 꿈뻑이다 흘러갔다. 들었으나 남은 것은 없었다. 긴장해서 그래. 두 번째 수업은 비장하게 수업 제목을 적고 보니 끝났고, 세 번째 수업에선 눈물이 흘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 정말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은 수업 내용을 둘러싸고 토론을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눈만 깜빡일 뿐이다. 무엇을 들었는지도 알 수 없고,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다시 한번 불안이 엄습한다. 그 길고 긴 환멸과 자기혐오의 시간을 딛고 이곳에 왔는데. 이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다른 모양의 자기혐오일 뿐인가. 나는 스케일이 남다른 등골브레이커가 될 운명인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일 년을 채운 뒤 볼 품 없는 누더기가 되어 가족 앞에 설 것인가.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듣고 싶은 주제로 가득 찬 수업들이 나를 선택하라고 내 앞에 늘어서 있는데, 무엇을 선택해도 그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답답함과 울화였다. 처음 해외석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는 오만하게도 한국 대학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갖은 유난을 떨지 않았던가.
실로 1 세계 대학의 교육은 얻을 것이 많았다. 온 세상의 학자들이 영국과 미국, 유럽으로 모여든다. 서글프게도 그들의 생에 새겨진 부조리를 1 세계의 언어에 실어야만 가장 멀리까지 보낼 수 있는 현실이 그들을 1 세계 학교로 잡아 끈다. 때문에 새롭게 등장하는 학문, 새롭게 드러나는 세상의 균열은 1 세계 대학에서 가장 먼저 빛을 볼 가능성이 높다. 그 역동의 현장에 앉아 나는 듣지도 못하고 소화하지도 못한다. 이 사실이 나를 가장 괴롭혔다. 예외가 된 삶들을 설명할 언어를 얻고 싶었는데, 그보다 발화되어 흩어지는 지식을 그러모을 언어조차 내게는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첫 학기는 재앙이었다. 수업 하나는 결국 포기했다. 미소가 여유롭고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도 따뜻하게 보듬을 것 같은 교수의 수업이었다. 칸트를 읽으며 현대 인권문제와 접목하는 수업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했다. 나는 이미 칸트를 읽었고 현대 철학사의 계보를 따라 헤겔에 이르는 맥도 훑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나는 같은 내용을 영문으로 기술한 책은 읽을 수 없고, 교수의 말은커녕 다른 학생들의 논의도 쫓아갈 수 없었다.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하는 일 남 일이었다. 교수는 매주 수업 전 해당 주차 리딩을 마친 뒤 짧은 에세이와 토론 주제를 정리해 제출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능력도 없는 내가 그 과제를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교수님께 메일을 한 통 보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수강을 철회하고 싶다는 짧은 메일을 쓰는데도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제이넵*, 미안해요. 당신 수업은 아주 흥미롭고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제 수준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업인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수강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
그렇게 개강 첫 주, 나는 첫 포기를 선언했다. 노트북을 닫았다. 메일 한통을 보내고 진이 다 빠져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아주 길고 지난할 험지가 아득히 펼쳐져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해당 교수의 이름은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