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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Sep 05. 2021

'끝'을 고하기 망설이는 당신에게

 나를 포함해 우리는 모두, 끝내야 함을 알면서도 망설이는 경우가 찾아온다.

 이를테면 이제는 작아진 저 셔츠를, 지난날 내가 가장 빛났다고 생각했을 때 몸에 착 감기던 저 셔츠를, 내 몸이 다시 그때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으로 몇 년간 버텼지만, 실은 이제 다시는 입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저 셔츠처럼 나만 포기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쌍방 간의 합의가 되어야 하는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대게는 며칠 머리를 싸매고 밤낮 고민하게 되는 건 이 쪽 문제다. (물론 셔츠를 버리는 문제로 며칠, 몇 달을 고민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누누이 들어온 아주 진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옛 말에 틀린 말 하나 없다고, 아주 맞는 말이다. 모든 일에 끝이 있고 끝이 나면 지금껏 고민해온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다. 크건 작건 또 다른 고민의 시작이 되게 된다.


 같이 있으면 싸우기만 하고, 더 이상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재미있지도 않고 오랜만에 만나도 서로 딱히 이야기도 하지 않는 여자 친구에게 헤어짐을 이야기한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머릿속에 베이스 드럼 소리로 시작해 '다이나믹 듀오'의 '솔로'가 울리겠지만, 조금 지나 보면 그녀와 걸었던 거리에 혼자 있는 내 모습에 쓸쓸함을 느끼고, 여자 친구 있을 때는 연락도 잘 오던 친구 놈들도 이제는 연애한다고 바쁘단다. 몇 달이 지났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를 들어가 보았지만, 이미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에 하트가 박혀있다. 마음이 너무 아리고 혹시 그때 내 결정이 잘 못된 게 아닐까 후회된다.


 혹은 매일이 지긋지긋한 야근이고, 월급은 오르지도 않는 것 같고 그래도 꾹 참고 이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내가 맨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저 차장님이 내 미래의 가장 잘 된 모습일 것 같은데 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맞나 고민하다가 사직서를 낸다고 해보자.

 나는 자유인이 된 것 같은 마음에,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여유 있게 커피도 한잔 하고 여행도 좀 다니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흘렀고 이제 슬슬 뭔가 시작을 해야 되기는 하는데 생각보다 이직은 쉽지 않은 것 같고 그래도 아예 사회 초년생은 아니다 보니 회사 보는 눈도 좀 생기긴 해서 아무 데나 갈 수는 없다. 게다가 회사 다닐 때는 몰랐는데 어디 나갈 데도 없다 보니 옷도 안 사게 되고 돈 나가는데 없다고 생각했는데 통신비에, 식비에 정말 숨만 쉬어도 돈이라는 말에 절실히 공감이 되기 시작한다.



 맞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며칠을 아니 몇 달, 심지어 몇 년씩이나 내 발목을 잡던 그 고민에 결단을 내려 끝내게 되어도 내 삶이 마냥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삶은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며 흘러간다. 그렇다면 작별을 고하지 않는 내 삶이 그보다 행복하냐 하면, 그 또한 아닐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끝내기'를 고민한 거다.


 행복하지 않은 연애를 이별 후의 혹시 모를 외로움, 후회 때문에 보류한다면 내 하나뿐인 삶에 하루밖에 없을 오늘을, 억지로 그 시간을 견뎌내며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 '일'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문제없는 직장이 없고, 하물며 내 사업을 하더라도 문제는 시시각각 다른 형태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오랜 시간을 고민해 그 끝을 고하고자 했다면 나 자신의 끙끙 앓는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끝내고 나면, 분명 또 다른 고민, 문제는 시작될 것이다. 그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문제일 수 도 있지만 반면 아주 사소하고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끝내지 않는다면 우린 알 수 없는 것이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연애든, 회사든 무언가에 작별을 고하며 느낀 생각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 끝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겠지만 그 끝이 있어야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느낀 바로는 그 관계 안에 있을 때는 정확히 모른다. 그 관계의 원 안에서 나와, 그 안에 있던 나를 뒤돌아 보았을 때에 그때 나는 행복하지 못했구나, 더 나은 내 삶을 살 수 있었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결국엔 내가 질 수밖에 없고, 내가 져야만 한다는 것. 다른 말로 말하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으니 남의 말보다 내 안의 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끝내기를 고민하는 나에게 누군가는 '그래, 네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당장 끝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경험상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만류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배부른 소리 한다며 투정으로 흘려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며 네가 참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단호하게 그건 안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주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조언과 이야기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목소리가 그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가장 크고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혹은 당연히 가족의 목소리보다도)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종교가 무엇이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든 간에 나 자신이 '나'로서 사는 이 삶은 한 번뿐이라고.

 그 삶 속에서 짧게든 오랜 시간이든 무언가를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물론 누구도 아닌 단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겠지만, 당신의 고민은 결코 지나가는 생각이 아니며 내가 나 자신과 진솔하게 이야기해 봐야 한다는 신호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 당신이 끝을 고한다고 해서, 내일 당신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끝을 잡고 있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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