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형을 통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혼자 외국에 나와서 살다 보니 마음이 얼마나 안 좋을까, 또 당장 오지도 못할 텐데 하며, 내게 소식을 알리지 않으시려 했던 부모님에게도 미안했고, 부모님 위로도, 장례식장에서 해야 할 일들도 모두 형에게 떠넘기기만 하고 온 것 같아 미안했다.
재작년에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사촌누나를 통해 들었다. 그때는 사실 현실감이 없었달까, 한동안 멍했었다. 이번에 또다시 이런 일이 있고 나니, 외국 살이에 가장 힘든 일은 '부고를 받는 일'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형은 담담히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 할머니 좋은 곳 가시길 빌어드리라 했다. 나는 종교가 없다. 우리 할머니의 영혼을 누구에게 잘 부탁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종교는 어쩌면 이래서 필요한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하늘을 보며 그냥 그 어떤 신이든, 내 부탁을 듣는다면 우리 할머니 가시는 길 잘 모셔주기를 바랐다. 혹은 이 먼 타국에 있는 손자의 목소리가 만약 우리 할머니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다만 이제는 아프지 않으셨으면 했다. 오랜 시간을 병상에 누워 아파하셨을 테니 이제는 아프지 않으셨으면 했다.
나는 이제 엄마와 할아버지가 가장 걱정이 된다.
내게는 할머니지만, 엄마에게는 '엄마'였다. 나에게 할머니의 기억은 내가 할머니 댁에 갔을 때의 건강하셨던 할머니의 모습, 점점 편찮아지셨던 모습, 그리고 병상에 누워계셨을 때의 모습들이 전부일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할머니는, 그 젊었을 시절부터 웃고, 울고, 싸우고, 또다시 웃는. 당연히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엄마에게 느끼고 있는, 또 기억하는 모습 그 이상일 것이다.
그만큼 후회도, 못해준 일들도 많다고 생각하고 계실 거고,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실 거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내가 한국에 휴가 갔을 때 마주한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보다 살이 너무 많이 빠져있었고 더 이상 나를, 아니 누구도 알아보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너무 오랜만에 뵌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달라져있어, 뒤돌아 울었다. 하지만 엄마도, 할아버지도 할머니에게 예전 건강했을 때 할머니를 대하듯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나이가 먹었음에도, 어리광을 피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티도 내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이야기도 해야 한다고. 표현은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나이가 먹어도 아주 작고 연약한 아이가 항상 함께 있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태어나 가장 먼저 그렇게 만난 인연이 부모님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기대고 쉬고, 또 그랬던 나를 떠올릴 수 있는 언덕은 부모님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는 반려자가 새로운 언덕일 것이다.
엄마에게,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그 언덕이, 이제는 마음속에만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저린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에게도, 그리고 할머니의 영혼에도 평안함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