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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한 Mar 30. 2024

마음의 주파수가 맞는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

    교사에게 3월 2일은 떨리는 날이다. 1년을 함께 할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등교해 교실에 앉아 의자가 하나하나 채워지는 것을 본다. 1교시가 수업을 시작하고, 선생님 소개를 차분히 마치고 나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아이들과는 마음이 잘 맞겠구나, 이 아이들과는 1년 내내 삐그덕거리겠구나.


    초임교에 있을 때는 유독 마음이 맞는 아이들이 없었다. 나는 사실 별로 낙천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해 보면 되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교실에서는 예의와 규칙을 강조하고, 외모 평가나 여성/장애 혐오적인 말은 쓰지 않도록 엄격하게 지도하는 편이다. 나름 방대한 포부를 가지고 학급 운영을 했지만 2019년부터 3년 간 만난 아이들과는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처음 도전하는 활동을 할 때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격려해도 반 대항 발야구 시합에서 졌다는 이유로 '역시 우린 안 된다'며 풀이 죽고, 외모 평가의 문제점을 다양한 수업을 통해 이야기했는데도 곳곳에서 외모를 평가하는 말이 들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나 역시 맥이 빠졌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공을 주고받는 테니스를 하고 싶었는데 정작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벽에 공을 혼자 튕기는 스쿼시였다.


    복합적인 이유로 교사라는 직업에 지쳐가던 4년 차, 드디어 마음에 맞는 아이들을 만났다. 첫날부터 유독 눈빛을 반짝이며 손을 번쩍번쩍 드는 아이들. "올해 여러분은 선생님과 정말 마음이 잘 맞을 것 같네요"라는 말이 진심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역할극을 발표할 때면 서로 앞다투어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안 하면 안 돼요?' 대신 '더 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었는데도 교실은 평화로웠다. 아이들은 함께 만든 규칙을 지키려고 했고, 소외되는 아이를 살뜰히 챙겼다. 왜 외모 평가를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할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 누군가 외모 평가나 성 차별적인 말을 하면 '그거 차별이야!'라고 입을 모아 말하기까지. '아이들이 예쁘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나의 의지는 많이 꺾여 있었다. 받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불이익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하는 아이들, 열심히 준비한 수업보다 피구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슬럼프가 왔다. 교사를 보는 학교 밖의 곱지 않은 시선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할 이유를 잃었다. 즐겁지 않으니 버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도 예쁘지 않고 수업도 즐겁지 않다면 대체 나는 교사를 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 해 만난 아이들은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작은 선물에도 '우와~'하고 탄성을 부르며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외쳤고, 교과서를 읽는 것조차 재밌어하며 깔깔댔다.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외부 예산을 받아 우리 교실만의 굿즈를 만들고 간식을 나눠줬다. 생일 파티나 체험 학습처럼 특별한 날에 찍은 사진은 포토 프린터로 출력하여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더 즐거운 활동을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작은 놀이 활동이나 학교 속 체험 학습 같은 수업을 많이 기획했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 만큼 아이들도 나를 참 좋아했다. 점심시간이면 같이 보드 게임을 하자고 나를 불렀고, 돈이 드는 선물은 일절 받지 못한다는 나에게 종이로 빼빼로를 만들어주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가는 곳에 졸졸 따라다니며 관심을 보였고 아무 날도 아닌 날에 갑자기 편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잘 맞든 아니든 교사와 학생이 헤어질 날은 온다. 2022년의 종업식은 유독 시원섭섭했다. 매 해 종업식이면 그저 후련한 마음뿐인 다른 해와는 달랐다. 종업식 영상을 본 후 마지막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하율이는 5학년 올라가서도 상냥한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어"

"동운이는 5학년 때도 캠페인처럼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랄게"

"시현아, 무엇이든 궁금해하던 그 탐구 정신 잊지 마!"


    여운이 잔뜩 남았던 종업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업식 전 날, 마지막 수업 시간에 적었던 '선생님이 소개합니다' 학습지를 펼쳐보았다. 한 해 동안 재밌었던 점, 아쉬웠던 점, 후배들에게 전해 줄 선생님에 대한 소개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외모 평가를 싫어하셔.'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셔. 모르는 게 있으면 꼭 물어봐.'

'선생님께 더 바라는 점은 없어. 선생님이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

글을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읽을 때였다. 한 문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선생님, 저는 4학년이 가장 재밌고 행복했어요. 다른 친구들도 그랬겠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어린이의 한 해. 한 해에 오롯이 한 사람의 발자국이 남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린이는 교사라는 세계에서, 교사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 문장에 담긴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커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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