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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빅토르 Dec 13. 2022

슬로베니아에서 만난 친구

2022년 11월 27일의 기록

사람들이 내게 왜 여행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난 보통 이렇게 대답한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여행을 좋아한다고. 지난여름에 다녀온 나의 유럽여행을 채워준 것도 여행 중에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인스타그램을 주고받았지만, 연락이 잘 안 되는 친구도 있고 정말 좋은 대화를 나눴지만, 찰나의 순간에 나눈 대화이기에 인스타그램을 주고받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짧은 만남과 헤어짐이 여행의 묘미이기에 아쉽지만, 또 여행하다 보면 새로운 만남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지난 7월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를 여행할 때 머물던 호스텔에서 함께 머무는 여행자 친구들 12명이서 다 같이 클럽에 갔던 적이 있는데 그 12명 중 뉴질랜드에서 온 릭에게서 9월 달에 인스타그램 디렉트 메시지로 11월에 한국에 올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유럽에서 만난 친구를 운이 좋게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과 그 친구에게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상상만으로도 들떴던 기억이 난다. 


릭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그리고 대만을 거쳐서 한국에 왔다. 항상 계획 없이 움직이는 릭. 나를 만나기로 한 날은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 찜질방에서 잤다고 한다. 근데 내가 외국인이었어도 찜질방에서 하룻밤 정도는 자봤을 것 같다. 릭의 찜질방이 홍대에 있어서 홍대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릭이 서울에 여행 온 이후로 북촌에 가보고 싶은데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해서 북촌에 가기로 했다. 홍대를 지나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탄 릭을 만났다. 반가움에 포옹을 했다. 안국역까지 가는 길에 우리는 슬로베니아에서 함께 클럽에 갔었던 그 12명 중 우리 둘만 동양인이라서 서로 더 반가워했었고 클럽의 음악은 별로였고 그다음 날 둘 다 체크아웃할 때 보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 그리고 서로의 유럽 여행 이야기와 릭이 느끼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국역에 내려서 북촌을 구경했다. 릭은 그렇게 신기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메인 스트릿에 가니깐 좀 좋아하는 게 보였다. 릭의 부모님이 중국분이시고 중국에 다녀온 경험도 있어서 그런지 한국이 그렇게 다른 동양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북촌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가 실수로 어떤 외국인 여자와 어깨가 부딪쳤다. 서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친구 5명과 함께 있었는데 정말 멋진 디올 가방을 메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인도항공 승무원이었다.  비행 후 시간이 남아서 서울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가 나에게 어제 홍대에 있는 외국인 클럽에 갔는데 본인들이 못 들어오게 막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 친구에게 이야기는 못했지만, 아마 유색인종인 이유로 그들은 클럽 입장을 거부당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에 화가 났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주제에서 다루기로 하고 난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후 그 친구가 사진을 부탁해서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고 나서 즐겁게 여행하라고 한 뒤 나와 릭은 북촌을 좀 더 걸었다. 연수 누나와 왔을 때 만났던 고양이를 또 만났고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의 사진을 또 찍었다. 

릭에게 인사동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니 릭도 좋다고 했다. 인사동으로 가려고 안국역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날 탁하고 잡았다. 날 잡은 사람은 아까 북촌 메인 스트릿에서 만난 인도인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에게 호텔로 가야 하는데 택시가 안 잡힌다고 택시를 잡아줄 수 있냐고 해서 난 당연히 잡아주겠다고 했다. 내가 유럽에 있을 때 날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답하지 못했는데 그 보답을 이 친구들에게 해주면 이 친구들도 나중에 누군가를 도와주며 세상이 따뜻해질 거라는 세상이 들었다.

카카오 택시 어플을 켜서 자동결제가 아닌 후불 결제로 바꾸고 택시를 불렀다. 어디로 가냐고 하니까 드래곤시티로 간다고 했다. 좋은 호텔에서 머무는 그들이 굉장히 부러웠다. 6명이라 택시 두 개를 잡아줬다. 인도인 무리 중 한 명이 오늘 밤 파티를 할 거니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다음 날이 월요일이라 출근해야 해서 못 간다고 말하고 아쉬운 마음에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공유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릭과 나는 인사동으로 가서 인사동 거리를 구경했다. 안녕 인사동 건물에 플리마켓을 해서 가보았는데 누룽지 과자를 팔아서 릭에게 한국 전통과자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해주고 먹어보라고 하니 익숙한 맛이라며 맛있다고 했다. 인사동 거리를 좀 걷다가 낙원상가를 보여줬다. 엄청 놀란 릭은 뉴질랜드에는 이런 상가가 없다면서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낙원상가를 구경하고 나와서 안국역 사거리에 있는 김치찌개 집에 들어갔다. 식당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궁궐 가는 길. 

릭의 인생 첫 번째 김치찌개였다. 릭은 정말 맛있다고 했다. 너무 맛있어서 뉴질랜드에서도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레시피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막걸리 두 병에 계란말이까지 먹으니 너무 배불렀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 우린 안녕 인사동에 있는 인생네컷을 찍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유럽여행 때 만난 친구를 한국에서 또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친구와 내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쓰면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더 많은 외국인 친구를 만나 내 생각의 그릇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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