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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슬 Dec 26. 2021

울고 싶으면 울어

D+788 크리스마스의 일기

  아들은 올해로 벌써 3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작년과 재작년엔 너무 어렸으므로, 산타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산타 이야기를 별로 한 적이 없었지만, 어린이집의 공이 컸다. 몇 주 전부터 아이는 줄곧 산타에 관한 이러저러한 조각 정보들을 습득했다. 하원할 때 원장 선생님은 "우리 OO이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 받고 싶어?" 하고 물어보셨다. 어린이집의 놀이공간 한쪽 벽에는 며칠 전부터 커다란 산타 그림이 붙었고, 번쩍번쩍 불빛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도 산타 모형이 놓였다. 희고 덥수룩한 수염이 난 얼굴에, 크리스마스 날 빨간 옷을 입고 루돌프라는 코가 빨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선물을 주러 오시는 분,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바로 그분 말이다.


  산타란 아이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기 위한 어른들의 묘책일 수 있으나, 생각해보면 선물을 담보로 한 다소 가혹한 협박(?) 아닐까. 산타의 선물 수여 원칙을 알려주는 노래 '울면 안 돼'의 가사를 잠시 떠올려보자.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요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낼 때 장난할 때도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요

  노래의 가사에 따르면 산타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으며, 짜증 내거나 장난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노래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점은 단연 '울음'에 관한 것인데, '우는 아이는 나쁜 아이이고, 나쁜 아이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산타 할아버지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으므로 아이가 조금 울었다고 한들, 아니 좀 많이 울었다고 한들 결과적으로 선물을 주시기는 한다. 하지만 울음에 관한 그의 가치판단에 나는 저항하고 싶다.



  울음이라는 행위는 보통 어떤 강렬한 감정 -이를테면 슬픔, 분노, 기쁨, 답답함, 짜증, 수치, 공포 등- 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그것이 마음에 그저 담아둘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면 이는 울음이라는 행위로 터져 나오곤 한다. 다시 말해, 울음 행위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우는 행위자의 마음에 있는 어떤 감정이 아주 커다랗다는 뜻이다. 스스로 울음을 통제할 수 있으려면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전두엽 발달이 완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감정 조절 능력이 보통의 어른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 따라서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주 사소한 이유인데 아이는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운다. 타인의 울음은 누구에게나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오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울음을 통제하고자 하는 어른의 욕구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산타의 선물로 협박하는 전략에 늘 불만을 품어오고 있던 나도 아이가 계속 칭얼거리자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셔'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울면 선물 못 받아'라는 전략이 '뚝!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라는 반응보다는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 쪽 모두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실 산타를 통해 통제하고자 하는 울음은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으로서의 울음'이라기보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수작으로서의 울음'일 것이다.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지만 26개월인 우리 아들도 후자의 울음을 종종 사용한다.) 그러나 '울면 안 돼'와 같은 단순한 노래에서 복잡한 울음의 원인을 모두 세분화하여 가사로 만들 수도 없을 테니, 결국 모든 울음은 나쁜 것이라는 공식이 아이의 뇌리에 콕 박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울면 안 돼' 말고 우리에겐 새로운 노랫말이 필요하다. 

  

  나는 새로운 산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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