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사차원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남들은 사차원이라는 말이 귀엽거나 특별하다는 뜻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선 나를 옭아매는 족쇄 같았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나는 따돌림을 당했었고, 그때마다 난 내 성격을 탓했다. 이것이 내 본질이란 걸 알기에 늘 마음이 아프고 불안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저 말을 항상 들었고, 먼 미래에도 저 말이 나를 따라올까 봐, 나이 먹어서도 적응하지 못할까 봐 남몰래 울었던 날도 많았다.
20대 후반 즈음부터는 아무도 내게 사차원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난 '드디어 나도 평균에 들어갔구나' 싶어 안도감과 함께 이게 뭐라고 너무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중3 때부터 난 갑자기 인싸가 되었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고, 활달한 성격 덕에 어딜 가도 환영받으며 살았다. 소위 일진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조차 나를 좋아하고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줄 안다고 했던가. 감정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따돌림으로 인해 난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이것은 내 일부가 되었다.
그때의 난 마음의 문을 닫게 된 태초 원인을 사차원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 본질이, 나 자체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젠 벗어났고, 지금의 난 사차원이 아니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삼십 대가 되고, 직장에서 친한 직장 동료 한 명이 나에게 "넌 사차원이야"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히며,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현재 내 감정을 말하니 동료는 말했다.
“네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세월이 흘러서 ‘사차원’이란 말을 못 했던 거였을 거야.”
잔인하게도 현실적인 말이다.
맞아, 누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사차원이라고 하겠는가.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내 무기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는 것. 예전의 어린 나였다면 무너진 상태로 허우적거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살아야 한다. 버텨야 한다. 나이도 많다.
감정이 세뇌되기 전에 무시했고 덕분에 충격은 하루도 채 가지 않았다.
그 주 주말에 인터넷으로 사차원인 척하는 사람 말고 진짜 그런 말을 듣고 살아온 사람들을 찾아봤다. 나처럼 사차원이란 말을 싫어했으며, 저들도 성격 기질은 족쇄란 걸 알기에 과거의 나처럼 많이 우울해했으며, 그중엔 극단적인 생각을 한 사람도 꽤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왜 같은 말을 해도, 우리에게만 '특이하다'는 딱지가 붙는 걸까? 이해가 안 된다. 너무 억울했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개인에게 저런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바람에도 휘청이는 약한 것이 사람인데, 그 사람을 사차원이란 감옥에 가두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무리하면서 좀 더 끄적이자면, 사실 이 글엔 거창한 결론은 없다. 개인을 낙인찍고 가두는 행위가 사회적 문제라 찌를 것도 아니며, 뭐 찔러봤자 어차피 사람들은 내 글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나처럼 힘들어서 검색해 들어온 사람들일 테고, 우리에게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테니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 무례하다고 말해 봤자 소수는 다수를 못 이기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저 의식의 흐름으로 끄적인 것이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었다면 충분하다. 지금 그가 격고있을 무력감과 패배감을 밟고 더욱이 강해지길 바란다.
#에세이 #사차원 #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