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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heleth Jun 21. 2022

원래의 자리

왜 이곳은 그의 자리가 아니었는가

석주임님의 첫 소개는 "배운게 없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살림 탓에 배움의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 대신 그는 작지만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고, 도매시장 같은 곳들을 전전하며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제는 좀 자리잡고 직장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있어서 입사했다고 한다.


마침 회사는 막 발돋움을 시작한 신사업을 위해 직원을 여럿 필요로 하여 "배움과 경력에 상관없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영입하고 있는 차였다. 그것이 그에게도 직장생활을 시작할 자리가 있었던 이유였다. 회사에서는 비록 별다른 경력없이 시작한 직장생활이지만 그래도 40대에 한 아이의 아빠인 그에게 직급이 없어 되겠느냐고 "주임"이라는 직함을 붙여주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석주임님을 좋아했고 가까이 지냈다. 그에게는 단지 공식적인 경로로 배움이 없었을 뿐, 그의 어조는 단단하고 말에는 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적잖은 나이차에도 누구에게나 예의를 지키고 존대하였다. 10년 이상 어린 나에게도 늘 "주임님"이라고 존칭하며 부르던 그였다.


어느 중견기업에서 20년 가까이를 영업통으로 일했다던 부문장이, 오늘 중 명함 100장을 돌리기 전까지 돌아오지 말라며 동대문으로 보냈을 때에도, 그는 아무 불만없이 짐을 싸고 있었다. 내가 듣다가 "아니 주임님, 하루 10시간 동안 100장을 돌린다 하면, 1시간에 10장, 6분에 한 장인데요. 하루 될만한 양이 아니잖아요."라고 기가 차서 외칠 때에도, 그는 그저 미소를 머금으며 답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게 내가 가진 첫 명함이에요."


Howard Bouchevereau, <Business Card Mockup>, https://unsplash.com/photos/xhwBL9wKY_Y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은 방향으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신사업이 난항을 겪자 회사 분위기도 조금씩 사나워지기 시작했고, 경영진 회의가 열릴 때면 새어나오는 고성에 온 직원들이 귀를 쫑긋 세우기 마련이었다. 급기야 신사업 홍보를 위해 특단의 대책이라며 경영진으로부터 공지사항이 하달되기에 이르렀는데, 어느 싱어송라이터의 콘서트에 회사가 신사업 브랜드를 걸며 후원사로 나섰던 것이다.


거기까지라면 아름다웠겠지만, 회사 일이라는 것이 그럴리가 있나. 그 공지사항에는 콘서트를 통해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부서별 지시사항이 아주 구체적으로 쓰여있었다. 그 지시에 따라 디자인팀은 콘서트에서 나눠줄 기념품에 신사업의 BI를 새기기 위해 시안을 뽑기 시작했고, 운영팀은 회사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에 콘서트 홍보를 올리기 위해 열을 올렸다.


개발실 소속이었던 나 또한 모든 업무를 뒷전으로 미루고, 신사업 브랜드 사이트에 할인쿠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다. 콘서트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우리 브랜드 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티켓에 끼워 배부할테니, 콘서트 전에 쿠폰 시스템을 완성하라는 것이 우리 개발실에 떨어진 경영진의 지시사항이었던 것이다. 행사를 위해 시스템을 만드는 주객전도의 상황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지만, 나는 석주임님을 보며 아무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영업 담당인 석주임님은 자리에 앉아, 영업과 아무 상관없는 콘서트 문의 전화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옆 사람들이 더 당혹스러워 할 업무분담에도, 석주임님은 우직하게 또는 바보처럼 담담하게 그것을 감내하고 있었다. 가끔 점심시간에 오가다가 만나서 그의 편을 들며 윗 분들 흉을 보아도, 그는 약간의 착찹함을 미소로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Clément Falize, <Glass window frame>, https://unsplash.com/photos/z_2gYApfdqc


콘서트 날이 다가오면서 회사 분위기는 점점 날이 서갔고, 마침내 일대파란을 일으킬 전사공지가 올라오고 말았다. 콘서트장에 행사스탭으로 직원들을 동원하겠다는 매머드급의 내용이었다. 그 콘서트 날짜는 주말이었기에, 그 내용이 모두에게 불러온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심난함을 피해 바람을 쐬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담배를 물고 있는 석주임님을 만났다. 표정이 없는 듯, 약간은 지친 듯, 그런 묘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그는 연기를 삼키고 있었다. 몇 마디 인사를 주고 받고 같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윽고 석주임님이 평소처럼, 하지만 조금은 얹짢은 듯이 입을 열었다.


"참나…. 저같이 잡일하던 사람들이야 괜찮은데, 주임님처럼 대학원까지 나온 고급인력들한테도 그러면 되나요."


석주임님이 회사에 대한 거북한 마음을 직접 드러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그는 자기에게는 그런 처우도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다. 단지 그 옆에서 순식간에 고급인력이 된 나는 무슨 말을 할지 다 잊어버린 채 그를 먹먹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듬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회사는 사업철수를 결정하였다. 신사업부문에 속했던 적잖은 직원들은 다른 부서의 제안을 받아 적을 옮겼다. 그러나 오직 석주임님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석주임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거죠." 차분한 그의 말은 애써서 착찹함을 숨기듯이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이 들렸다.


작별하게 된 그 날, 석주임님은 여느 때와 같이 담담했다. 대체적으로 퇴사한 자와 남은 자의 인연이 그러하듯, 석주임님과도 밋밋한 몇 마디 인사를 끝으로 소식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 어떻게 하셨을까. 정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셨을까. 하지만 그 원래 자리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왜 이 곳은 그의 자리가 아니었단 말인가.



(표지사진) Joshua Davis, <White rolling armchair in front of table>, https://unsplash.com/photos/Z0U5hXqo_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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