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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oheleth Oct 15. 2022

수혁이 만두를 사지 않은 이유

 

수혁은 나와 헤어지기 전에 저녁을 사들고 가겠다고 했다. 같이 먹자고 권해보려 했지만,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남자 둘이서 하루에 두 끼나 같이 먹겠느냐면서 수혁은 손사래를 쳤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안주로 배를 채워보라 권할만도 하다마는, 불행히도 음주는 내가 피하고 있는 터였다.


"안 먹기는 그런데, 먹자니 배가 또 많이는 안 고프네."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부도심에 있는 대형 쇼핑몰이었고, 먹거리들이 이 곳 한 층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애매한 배고픔 속에 쉽사리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이도저도 아닌 시장기는 고픔과 부름의 양극단보다 못한 법. 식당에 들어갔다면 진즉에 음식이 우리 앞에 대령되었을 시간을, 수혁은 포장해 갈 저녁메뉴를 찾는데 흘려보내고 있었다.


마침 까눌레와 휘낭시에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베이커리의 팝업 스토어가 눈에 띄었다.


"차라리 간식은 어때?"

"단 건 안 땡 겨."

"저 집 까눌레가 되게 유명한데."

"까눌레? 중국음식이야?"

"이런 무식한 놈…."


졸지에 중화요리집이 되어버린 베이커리를 뒤로 하고 눈길을 돌리는데, 정말로 중화요리집처럼 장식한 또다른 팝업 스토어가 있었다. 왕만두 가게였다. 만두! 애매한 공복감에 맞추어 적절하게 개수 선택이 가능한 메뉴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한 끼이지 않은가. 수혁 또한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그의 발걸음이 그 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고기 세 개에 김치 두 개 주세요."


수혁은 꽤 만두가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 흐릿한 배고픔 속에서도 3:2로 맛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를 놓지 않았다. 거기에는 시장골목 만두집에서 흔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싹싹한 아주머니의 접객도 한 몫 하였으리라.


"저희가 원래 연희동에 있었는데 이번에 여기 처음 나온 거에요. 맛있어요!"


그런 싹싹한 아주머니들은 대게 설명이 길다. 나는 크게 그런 것이 거북하지 않았지만, 수혁은 그냥 무덤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싹싹한 아주머니들은 은근히 말을 놓는 친화 스킬을 발휘한다.


"단무지도 드릴까?"


수혁이 달라고 하자, 냉장고 안을 열어보시던 아주머니의 기색이 밝아진다.


"이 시간까지 단무지가 남아있기 힘든데, 손님이 운이 좋네요!"


단무지를 담으면서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수혁의 표정도 조금 풀려있음을 보았다. 수혁에게 오늘은 무척 보내기 힘든 날이었다. 오전부터 갑자기 나를 불러내어 서울 이곳저곳을 끌고 다녔던 것도, 무너지는 마음에 도저히 혼자서는 이 날을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날에는 만두집에서 만난 작은 호의에도 위로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먹구름은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 다가왔다.


"젓가락은 몇 개 드릴까?"

"한 개만 주세요."

"아유, 혼자 드시게? 아직 결혼 안했어요?"

"네…, 뭐…."

"아이고, 빨리 젓가락 2개 가져가는 날이 와야 될텐데."


옆에서 보던 나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급히 고개를 돌려 수혁을 바라보니, 그를 감싼 공기는 이미 손끝하나 닿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그 만두, 안 사겠습니다"

"네?"


바람처럼 만두 가판대를 돌아나오는 수혁을 보면서, 아주머니는 "아니…, 저…."하면서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당황하여 급히 걸어나가는 수혁을 쫓아가야 할지 아주머니에게 무어라 설명이라도 곁들여야 할지 알지 못하고 탄식만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수혁이 1달 전 이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전처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표지사진) Jason Leung, <Dumpling on tray>, https://unsplash.com/photos/nEoSC-ab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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