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매력적인 사명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하는 유아교육이다.
전공을 만난 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참 교사의 삶을 그리게 되었다. 어쩌면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항상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지금까지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는, 유독 교실 속의 소극적인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더 세심히 살피고 관찰한다. 그리고 티 나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후 내재된 에너지를 표현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가령 대답하기 힘들 정도로 수줍음이 많다면 단답형 질문을 한다. 앞으로 나와 발표하는 것에 자신 없어한다면 "이번에는 선생님이 움직이도록 할게요."라며 다가간다. 그들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티 나지 않게 배려하면서 말이다. 때론 시간을 더 주거나 의지할 도구를 손에 쥐어주기도 하면서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일 년 전, 그날은 왜인지 모르게 답답했고, 이내 후회했다.
재원이는 굉장히 영리한 친구였다. 한글을 배운 적도 없는 데 위키백과를 검색해 주면 꽤 어려운 단어들이 들어간 문장들을 술술 읽어 낸다. 곤충에 흥미가 많았던 터라 교실에 오면 곤충책 읽기부터 시작하여 곤충 색종이 접기, 곤충 책 만들기 등으로 확장하며 아는 것을 견고히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는 항상 " 우리 재원이는 교수하자~"라고 말하곤 했고 재원이는 씩 웃었다. 항상 미소 띤 얼굴에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해주는 마음까지 선한 아이였다. 그런데 딱 하나 고민이 있다면 바로, 고집이 문제였다. 대답할 수 있음에도 시간을 끈다거나, 본인이 하기 싫은 것은 입을 꾹 닫고 끝까지 대답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일과진행이 원활하지 않거나 새로운 기회나 도전을 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우려되었다. 좀 더 용기를 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용기맨"으로 애칭을 정해주었더니 한사코 자기는 용기맨이 아니란다. 목청을 높이면서 말이다.
문제의 그날은 신입유아가 다가와 재원이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놀자. 재원아"
친구의 제안이 너무나도 좋은 모양이다. 항상 미소를 띠고 있지만 광대가 더 승천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또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음음...."만 20초가 넘어간다. 옆에서 내가 대답하기를 촉구하고 신체적으로 유도해도 꿈쩍도 안 한다. 그 친구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친구를 찾아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재원이. 친구가 내민 손을 놓친 것이다. 그날은 단호하게 이야기를 나눠야겠단 생각에 말문을 열었다. "만약 네가 친구에게 용기 내어 다가갔는데, 그 친구가 재원이처럼 행동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건 재원이가 노력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외롭게 될 수 있으니 항상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말고 친구에게도 맞춰줄 수 있어야 해요." 재원이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나에게 급히 손 하트를 내보인다. 자신도 그 순간 속상했을 텐데 교사까지 다시 잘못을 언급했으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밤 퇴근 후에도 나의 감정은 유치원에 있었다. 연속적으로 답답했고 후회가 됐다.
'왜 오늘은 여느 날처럼 마음을 헤아려주며 넘어가지 못했을까?"
6세는 자신을 벗어나 또래에게 관심이 확장되는 시기이다. 그럼에도 개별차 또한 크기에 또래놀이를 강조하진 않아도 된다. 하지만 왜 그날은 나의 옆에서 암묵적으로 교사가 주도해 주길 바라는 재원이의 마음이 유독 무거웠을까? '성격이 고착될까 봐?, 이제 곧 7세 반에 갈 텐데 변화가 없어서?, 혼자놀이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은 채 잠자리에 누웠다. 두 아들을 대나무 숲삼아 처음으로 직장일과 관련된 하소연을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첫째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외친다.
"엄마가 잘못했어!"
나는 당황스럽고 억울하기도 해서 항변했다. 그런데 또 외친다.
"그래도 엄마가 잘못했어!"
그 순간 불현듯 아이들의 사회성이 부족해서 유치원 시기에 마음 앓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종이 접기로 시간을 보내던 첫째 아이의 가방 속 수북했던 종이접기 완성품들이 머리를 스쳤다. 유치원엄마 역할을 하느라 가정엄마로서 아이들의 마음은 보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아... 윤우도 힘들었었지? 윤우도 재원이 같았겠구나." 그 말에 이어 둘째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애들이 나보고 조용한 성격이래... 내일 유치원 가면 재원이 꼭 안아줘야 돼! 꼭이야!!!!!!!"
아! 아! 아뿔싸... 어디선가 본글이 생각났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 그날밤 재원이의 이야기는 의식 아래로 눌러두었던 나와 아이들의 과거, 어쩌면 현재의 우리들을 다시 만나게 했다. 유난히도 내성적이었던 나의 옛 모습이 재원이와 오버랩된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재원이에게 더 애가 쓰였던 게 아니었을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우리 아이들 같아서...
그렇게 다음날 재원을 꼭 안아주기로 아이들과 약속한 후 아침을 맞이했다.
교사로서 할 말을 했을 뿐임에도 재원이를 알기에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저 멀리서 등원하는 재원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후회 또는 화해의 표정을 지으며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떡였다. 그리고 어젯밤 약속대로 재원이를 꼭 안아주었다. 재원이는 다행히도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교사 또는 엄마의 바람대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개별 아이들의 속도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특성을 인정하는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날 이후 더 이상의 깊은 후회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