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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을 거닐다] No.3

3.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나였다.

by 오미경


[책 속을 거닐다] 세 번째 책은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인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이것이 이방인의 첫 문장입니다. 소설의 첫 시작이 이렇게 우울하면서도 차가울 수 있을까? 과연 첫 시작부터가 이방인다운 느낌이 들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카뮈의 '이방인'은 읽어봤거나 한 번쯤 줄거리는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유명한 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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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에 오래 떨어져 지낸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는 그 순간부터 이방인이 됩니다. 뫼르소는 사회가 규정해 놓은 룰에 따르지 않았어요. 보통 부모나 가족이 죽는다면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만, 뫼르소는 덤덤했지요. 그리고, 어느 날 터무니없이 "강렬한 햇빛"에 이끌려 사람을 살해하고 맙니다. 뜬금없이 햇빛은 왜 나오고 살인은 왜 나오며, 이게 왜 이방인과 관련이 있는지 이해가 안 가시죠?


먼저 카뮈는 인생에서 '부조리'를 외치던 사람입니다. 그 부조리한 면모가 이방인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 좋은 일을 겪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카뮈의 사상이죠. 부조리라는 것, 사실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제겐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하려고 해요. 철저히 '이방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이방인은 낯선 사람, 어떤 소속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죠. 뫼르소는 왜 이방인이 됐을까요? 바로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엄마의 장례식에서 엄마의 관을 열어 얼굴을 보려 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엄마가 몇 살인지도 모르며, 장례식 때 담배와 커피를 마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 애인과 노닥거리며 여행도 가지요. 그러다 권총을 들게 됩니다. 자신이 친하게 지내던 옆집 남자의 사건에 휘말려 싸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소지하게 됐죠. 그는 해변을 거닐다 그 싸움 패거리와 마주쳤고 햇빛에 눈을 뜰 수 없던 그 순간 자신의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남자에게 총을 쏩니다. 그리고 법정에 서게 됐죠.


위에서 말한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행동을 보인 뫼르소에 대한 불리한 증언이 쏟아지죠. 게다가 뫼르소는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살인한 이유를 태양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렇게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아서, 이미 죽은 사람에게 한 발의 총을 발사한 것으로도 모자라 네 발을 더 쐈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렇게 죽을 날을 기다리며 뫼르소는 진짜 삶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이방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나를 낳자마자 버린 엄마가 찾아와 "내가 네 엄마다. 그러니 날 먹여 살리렴"이라고 말하는데 거기다가 "싫어요. 나에겐 엄마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비난의 시선을 받을까요? 깜빡 잠이 들어 눈 앞에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성이 별로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요? 키워준 부모님께 돈을 벌지 못해 용돈을 드리지 못하고 그들의 노후를 든든하게 돕지 못하는 것이 불효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답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요. 우린 유교사상에서 자라왔고, 가족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불의를 참으면 안 되는 사회입니다.


아주 현실적인 예로 영화 '신과 함께'를 보고 울지 않았다고 하면 "피도 눈물도 없다. 어떻게 안 울 수가 있어?"라는 말을 들을 겁니다. 실제로 있던 일이기도 하고요. 내가 슬펐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슬퍼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정해놓은 암묵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던 거죠. 그 사람은 영화 한 편에 눈물을 흘리지 않아 이방인이 된 겁니다. 비약이 심했지만,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나 또한 이방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을 남긴 사망사건의 가해자 가족들이 불쌍하지 않아요. 죄를 저질러 다 늙은 나이에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저는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이겠죠. 가해자의 가족들은 무슨 죄냐, 그래도 노인네가 감옥생활하는 게 불쌍하지도 않으냐 라는 말을 할 겁니다. 어쩌면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 한 곳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이방인이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앞으로 이방인이 될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겠죠. 사람마다 한 장면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수만 가지인데 그것을 하나의 감정과 생각으로 묶어두고 이를 비켜나간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안 되겠지요. 물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요.


아, 이번에 새로 나온 새움판사의 이정서 번역본 이방인을 보면 뫼르소의 살해 동기는 위의 사진과 같습니다. 단순히 햇빛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총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라는 해석이 신선했습니다. 또한, 카뮈는 죽기 전 이 책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요.


"우리 사회는,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라도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단지, 이 책의 주인공이 그 손쉬운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장례식에서 가식적인 눈물, 슬픔을 보여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


우리도 언젠가 위장된 도덕이나 종교, 폭력에 얽매여 억지로 무언가를 해야 했던 일이 있지 않나요? 그 억지 행위를 하지 않는 순간 우리 모두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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