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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경 Oct 02. 2018

2. 프레드릭 배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늙어감과 알츠하이머 그리고 감동.

인간의 숙명, 바로 나이 드는 것과 죽음이죠. 제목부터가 슬픈 느낌이 물씬 풍기죠? 프레드릭 배크만 하면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베어타운> 등의 소설이 떠오르죠. 전 이 작가의 책을 3권 정도 읽었고, 오베라는 남자는 영화로 봤지만 제가 최고로 생각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은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인 거 같아요. 왜냐, 저를 울린 책이거든요.    

 

 알츠하이머는 우리 세상에서도 익숙하죠. 이걸 소재로 한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많고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죠.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을 ‘돌보기 힘든 사람, 골치 아픈 사람, 아무리 내 부모와 가족이라 할지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표현합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못난 존재로 그려지는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은 달랐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그려놨어요.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아버지와 손자가 등장해요. 소설 속 배경은 할아버지의 생각 속이고요. 할아버지는 손자를 남들보다 두 배 더 사랑해서 ‘노아’라는 이름을 가진 손자에게 더 많이 사랑한다는 의미로 ‘노아노아’라고 불렀답니다.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묻죠.  

  

“할아버지, 여기가 어디에요? 저기 날아가는 건 뭐죠?”

“여긴 내 머릿속이란다. 날아가는 건 내 기억들이고.”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노아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와 물건들 등등.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이것들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요. 바람에 날린 풍선을 잡아보려 손을 뻗어보지만 하늘로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기억 또한 그렇답니다. 잡아보려고 애써도 할아버지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붙들고 싶은 기억,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너무도 많은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꾸만 사라져 버리는 그 기억 속에서 산다는 것, 말 그대로 정말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인거죠.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저는 속된 말로 ‘노망난 노인네’라고 말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현실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들은 치료법도 없고 그저 서서히 모든 것을 잊어가고 퇴행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아주 불행한 병이니까요. 가족들마저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라고 들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들 또한 힘들다고 해요. <첫 키스만 백만 번째>라는 영화처럼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눈 뜨는 그 순간 여기가 어딘지,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무섭다고 해요. 낯설고 이해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내가 당신 자식입니다”라고 하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순순히 따라갈까요? 아니요.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니까요. 그런 환자를 보며 가족들은 답답할 뿐이죠. 왜 그러느냐고, 제발 자기 말 좀 들으라면서 화내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면 환자는 더욱 공포를 느끼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해요.


 우리는 이런 알츠하이머가 내 가족, 또는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특별해”라는 생각을 가진 동물이니까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짓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사고사나 병에 걸려 죽는 경우 다음으로 치매 판정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기 치매 발병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해요. 가끔 깜빡하는 건망증이 올 때 한번 씩 “내가 조기 치매인가?”하고 웃어넘기지만,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어요. 


삶이 있으면 죽음도 있고, 그 죽음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이 책에서 다룬 죽어가는 과정은 슬프게도 ‘알츠하이머’였지요. 단순 병이라면 의식이 있으니 가족들과 이별할 시간이라도 있지만 치매는 크게 아픈 곳이 없어도 뇌기능이 퇴화되기 때문에 의식이 없어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해 작별의 시간조차 갖지 못해요. 얼마나 슬픈가요? 특히나 이 소설에서는 이제 막 태어나 세상을 10년도 살지 않은 노아라는 손자와 곧 죽음을 앞둔 노년의 할아버지를 대비시키며 생과 사를 함께 볼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어린 아이와 노인의 케미 자체가 생과 사의 조합이 되는 거죠.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요?    


 알츠하이머는 환자 입장에서도 주변 사람 입장에서도 늘 이별의 날이라고 생각해요.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과거로 되돌아가는 환자의 기억 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놓고 싶지 않을 테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환자의 기억 속에서 자신들이 없어짐이 슬플 것입니다. 그렇게 알츠하이머와 늙어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더 확실하게 배우고 느끼게 됐어요.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을 수밖에 없는데 고칠 방법이 없어서 더 슬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해요.     

“노아노아야. 나는 널 끝까지 기억하고 싶구나.”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놓고 싶지 않은 기억을 손자라고 말해요. 다른 모든 기억이 다 사라져도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신의 손자, 노아노아라고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를만큼 아끼는 손자를 죽는 그 순간까지 꼭 기억하고 싶대요. 하지만, 그 기억도 다른 기억과 마찬가지로 종이처럼 손쉽게 날아가 버리겠죠. 이 짧은 책 한 권에서 삶과 죽음, 감동을 다 맛보고 나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 속에서 본, 아름답게 그려진 알츠하이머 환자와 손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이런 질문을 떠올렸어요.    



“여러분이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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