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까

멸종위기종은 '디지털 쪽쪽이'를 거부했다

by 건전남

호주의 숲에서 들려오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멈췄습니다. 주인공은 멸종 위기종인 '리젠트꿀먹이새(Regent Honeyeater)'입니다. 개체 수가 급감하자 어린 새들은 종 특유의 노래를 가르쳐 줄 '어른'을 잃어버렸습니다. 대신 뻐꾸기나 다른 잡새의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죠.


잃어버린 노래, 기계는 채울 수 없었던 빈자리


당황한 과학자들은 새들에게 종의 노래가 담긴 오디오 녹음본을 밤낮으로 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기계가 뱉어내는 데이터는 살아있는 관계와 교감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결책은 가장 본질적인 곳에서 나왔습니다. 야생에서 온 '노래 고수' 어른 새 몇 마리를 새장 속에 넣어주자, 어린 새들은 비로소 제 노래를 찾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regent-honeyeaters-wer.jpg 리젠트꿀먹이새 (Regent Honeyeater)


성능 좋은 녹음기가 줄 수 없는 ‘삶의 박동’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녹음기’를 준비합니다. 이름난 학원과 고가의 교육 매체라는 성능 좋은 오디오를 아이들 주변에 빼곡히 배치하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정답들을 완벽하게 따라 부르라고 재촉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데이터일 뿐, 삶의 박동이 담긴 ‘노래’가 아닙니다.


야생의 새들은 물리적인 어른 새가 사라져 노래를 잃었지만,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은 곁에 부모를 두고도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진짜 '어른'을 잃어버린 셈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정해진 트랙 위에서 길을 잃고 엉뚱한 소리를 내는 것은, 어쩌면 곁에서 진정한 삶의 선율을 들려줄 ‘어른 새’의 부재 때문일 것입니다.


‘디지털 쪽쪽이'의 역습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온전히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를 디지털의 늪으로 처음 이끈 것이, 당장의 피로와 대화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우리 스스로 쥐여준 ‘디지털 쪽쪽이’였다는 사실마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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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어른들 스스로는 손 안의 작은 화면이 쏟아내는 자극적인 영상에 푹 빠져 지내면서, 아이에게만 정적인 독서와 절제의 미덕을 강요하는 이중적인 불협화음 속에서 아이들은 길을 잃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나 삶의 결핍을 자녀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욕망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무거운 투사는 아이의 목소리를 지우고 부모의 기획만을 남길뿐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입이 아닌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아이들이 자기 '종'의 노래를 잊어가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로만 훈계할 뿐,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몸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리젠트꿀먹이새를 다시 노래하게 만든 것은 정교한 교육 지침이 아니라, 자신의 노래를 당당히 부르는 어른 새의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유산은 정답을 외치는 입술이 아니라, 묵묵히 제 삶을 살아내는 뒷모습입니다. 거창한 교육 철학을 논하기 전에, 오늘 저녁 밥상머리에서부터 당장 스마트폰을 치우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살아있는 대화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가 먼저 삶의 균형을 되찾고 정직하게 노래하기 시작할 때, 아이들도 비로소 자신만의 빛나는 목소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아이 곁에서 어떤 뒷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당신의 삶은 어떤 노래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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