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팔의 호랑이, 그리고 늑구

by 건전남

언젠가 가족과 거실에 둘러앉아 BBC 다큐멘터리 <아시아>를 보던 참이었습니다. 화면 속에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지더군요. 어두운 밤, 거대한 야생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 나타나 도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더니 이내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는 겁니다. "에이, 저거 CG 아니야?" 지켜보던 가족 모두 두 눈을 의심하며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살아가는 도심이 지척인데 거대한 맹수라니, 너무도 이질적인 조합이었으니까요. 호기심에 찾아본 그곳은 인도 중부의 도시, 보팔(Bhopal)이었습니다. 화면 속 호랑이는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그곳의 숨 쉬는 현실이었습니다.


image (2).png


인구 백만을 훌쩍 넘는 이 거대한 대도시 외곽에는 수십 마리의 야생 호랑이가 사람과 숲의 경계를 맞대고 살아갑니다. 밤이 되면 숲과 도시의 경계로 호랑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지만, 주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당장 녀석들을 쫓아내거나 포획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호랑이의 존재를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맹수를 가두지 않고도 삶의 터전을 공유하는, 아슬아슬하지만 경이로운 공존의 풍경이지요.


지구 반대편의 이 놀라운 호랑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 건, 며칠째 흙을 파고 철조망을 빠져나갔다는 늑대 '늑구'의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8년 전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결국 사살되었던 퓨마 '뽀롱이'의 비극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녀석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사육사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의 이면에서 문득 묘한 질문 하나가 피어오릅니다. 무사히 동물원 우리로 돌아가는 것이 늑구에게는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야생성을 잃어버린 채 정해진 시간에 주어지는 고기를 받아먹으며, 콘크리트와 흙이 섞인 제한된 공간을 맴도는 삶. 늑대가 진짜 있어야 할 자리는 적어도 그 울타리 안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과거 우리 산자락에도 그런 맹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배어 있었겠지만, 이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이 시대, 깊은 산속에서 기적처럼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십중팔구 마취총과 그물이 총동원되어 녀석은 두꺼운 유리창 너머에 전시될 것입니다. 호랑이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우리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 말이지요.


지금 우리 산중의 최고 포식자는 누구일까요. 기껏해야 삵이나 담비, 오소리 정도일 것입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숲은 겉보기엔 한없이 평화롭지만, 실상은 팽팽한 긴장감이 끊어진 불균형의 공간입니다. 산에 유독 다람쥐와 청설모가 많아진 것도, 고라니와 멧돼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도심을 헤매는 것도 결국 맹수가 사라진 텅 빈 숲이 만들어낸 단면일 것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생명을 밀어내거나 좁은 곳에 가두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진짜 공존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경이로움을 느끼며 거닐었던 아프리카의 붉은 초원이 유독 그리워집니다. 그곳에서 동물들은 전시된 구경거리가 아니라 온전히 그 대지의 주인이었습니다. 자연의 하모니는 맹수를 밀어낸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늑구의 길 잃은 외출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동물원으로 되돌아가겠지만,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도와 불편함이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유리창 너머의 안전한 구경을 넘어, 같은 흙을 밟으며 살아 숨 쉬는 진짜 공존의 방식을 고민할 수 있을까요. 늑구라는 한 생명체의 온전한 자유와 행복을 조용히 빌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30년 만에, '다시 중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