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인생의 근원_승연

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by 승연

오랜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 달랏에 갔다. 고원지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워낙 유명한 여행지니 큰 걱정 없이 여행을 떠났다. 편의점에 빵이나 과자가 담긴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그런 곳이었다. 대중 교통이 충분치 않아 90%가 넘는 사람들이 자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대기 공기가 좋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폐가 한쪽밖에 없다고 해도 한국에서 당당하게 일상을 찾았는데, 이건 뭔가 후퇴한 기분이 들었다.


대기질이 나쁜 건 마스크를 쓰면서 견디기로 했지만 고원지대에 도착하자 이상하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생활이 불편하고 신체에 고통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종일 돌아다닐 때마다 '어, 답답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나마 내 무의식을 다독일 수 있었던 건 네가 얼마나 불편하든지 이 땅에서 도망갈 방법이 없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드디에 제대로 숨이 쉬어졌다. 이게 숨을 쉬는 거구나 싶자 무리 없이 다녀왔다고 생각한 달랏 여행이 갑자기 무서웠다.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 함께 여행을 다녀온 친구 중에 임신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배가 볼록 나온 것이 보일 정도로 임신을 한 친구만 내 상태를 이해했다. '나도 숨 쉬는 게 좀 불편하긴 했어.'


그러니까 임신을 하지 않은 상태의 나와 임신한 상태의 친구가 비슷한 정도로 숨 쉬기가 답답하다는 걸 느꼈다는 뜻. 자궁 속 아이가 자라서 폐를 포함한 장기를 위로 밀어내는 내용이 담긴 교육용 영상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6평짜리 자취방에서 남자친구에게 “내 몸은 내 건데 내 맘대로 결정하는 게 뭐 어때서!”라며 소리지른 날이 떠오른다. 다행히 남자친구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네 말대로 헤어지자”라고 했다가, 5분 만에 마음을 바꿔 헤어지지 않기로 했다. 그 사이에 대단한 감정의 흐름은 없었다. 그냥 지금의 행복을 아이 때문에 종료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심리 상담 검사를 신청해 심리 검사를 진행했다. 연인과의 갈등을 얘기하다가 몇 번이나 울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검사실을 나오면 또 아무렇지 않았다. 제멋대로인 마음은 그 안을 들여다 볼 때마다 매번 다른 모양을 보여줘서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예민하게 태어난 건 집안 내력. 예민하게 자란 것도 집안 내력. 모든 걸 남탓만 하고 살고 싶지는 않지만, 이만큼 살았는데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천성이라고 생각하고 보듬어야 한다. 나는 예민한 나의 감정을 케어하기 위해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나한테 스트레스는 인생의 근원이다.


회사나 회사 밖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실 넓게 보면 도처에 뿌려진 불행이라는 것을 최대한 깨달으려 애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이웃을 껴안을 정도의 성인은 못 되지만 말 그대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착해지려고 이런 수행을 했는데, 요즘에는 오래 살고 싶어서 이런 수행을 한다. 너무 불순한 생각인가?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줄여 오래 사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다시 또 감기처럼 오는 불행에 재채기를 하고 있는 요즘, 나의 근원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다.


일단,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과 영화를 보면서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상기해보기로 한다.


*이미지는 AI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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