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백 번 해도 못 하는 일. 타인의 심장이 나와 같은 방향이 되는 것.
임대 가정에서 자란 나는 도수 높은 말로 채워지고.
3분 요리만 먹고 단순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때, 시 같아?" 노트에서 시선을 떼고 요다에게 물었다. "글쎄,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요다는 심드렁했다. "이건 어때?" 감상평 대신 꺼낸 것은 대금이었다. 지난번엔 인라인을 가져오더니, 그새 동아리를 또 바꾼 모양이다. 뜬금없는 대금 타령에 이유를 묻자 "들고 다니면 호신용으로 좋을 것 같아서"라는 저다운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춘천에 사는 한 소설가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대문을 열어둔 채 살았다. 누구나 올 수 있다는 취지였다. 우리도 '누구나' 중 하나였다. 비주류 세계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작가의 실물은 실망스러웠다. 비범한 척하는 노인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소설가를 아이돌처럼 숭배했다. 그가 입을 뗄 때마다 감격했다. 나는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어쩐지 사이비 종교의 집회 같았다. 그때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한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저는 별로 재미가 없네요." 내 속삭임에 그 애가 답했다. "저도 그래요." 우리는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습기가 들러붙은 여름밤, 서울의 공기는 끈적한 젤리 같았다. 건대입구에서 쌀국수를 먹고 우리는 캠퍼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문관, 경영관, 미래관. 무덤 이름 같은 건물들을 지나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요다(자신을 요안나라고 소개한 날, 내가 지어준 별명)는 손에 쥐고 있던 대금으로 등을 긁다가 다시 입에 가져다 댔다. "부부부-" 제대로 된 음도 나오지 않는 대금을 열심히 부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너 때문에 귀신 나오겠어." 내 핀잔에도 요다는 상관없다는 듯 연주를 이어갔다.
요다는 내게 궤도를 벗어난 행성 같았다.
과외 없이 수능 문제를 단 세 개 틀렸다는 명석함보다
내가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태연함'이었다.
요다에게는 나 못지않은 가정사가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을 불행 서사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울 시간에 과외 알바를 해서 등록금을 내고, 밥을 먹고, 월세를 냈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생각 안 해봐서 모르겠어." 나는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같은 심경으로 사는데 너는 무심해서 평화롭다니. 나는 요다를 동경했고 시기했다.
요다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럼에도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돈을 아꼈고 책 읽기를 싫어했으며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어느 크리스마스, 회사 동료들과 파티를 열었다며 연락이 왔다. "너도 와." 상세한 설명도 없이 던져진 초대장. 할 일 없어 간 곳에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요다는 개의치 않고 모두를 어울리게 했다. 거기엔 어떤 편견도, 계산도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우리가 낯선 곳에서 만났던 것처럼.
'공평하게 무심한' 요다의 세계. 자신의 불행을 해석하려 들지 않고, 특별 취급하지 않는 것. 나는 요다를 보며 삶에 진짜 필요한 재능이 무엇인지 생각하곤 했다. 해석하지 않기. 그냥 하기. 부부부, 소리라도 내보기. 내게 닥친 사건들 앞에서 공평하게 무심해지기. 마음이 한쪽으로 지독하게 기울어지면 나는 요다의 서툰 대금 소리를 떠올린다.
*이미지는 미드저니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