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다시 내것이 되어_승연

몸과 마음을 앓는 두 여자의 생존 일지

by 승연

병상에 있을 때는 살아 나가는 게 유일한 목표지만, 병상을 나오면 살아 가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된다. '살아 나가는' 것과 '살아 가는 것'의 간극은 생각보다 넓고 지독하다.


약 2년 여의 복학 기간을 포함한 요양 생활을 끝내고 나니 이제 남들처럼 돈 벌이를 해야했다. 당장 집안에 돈을 가져다줘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2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이때를 놓치면 영영 내가 원하는 일상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일상이란 무엇이었을까. 전공을 살려 책을 내지는 못한다고 해도, 전공과 가까운 일을 하는 것? 작품을 내는 창작이 주업은 아니겠지만 전시 기획이나 공연 기획이나 아무튼 뭔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서 다른 이들에게 '너 좀 다르구나.' 소리를 듣는 모든 일.


그리고 오랜 친구들과 카톡으로 상사 욕을 하고 만 원 이만 원짜리 세일 옷이나 화장품을 사고, 가끔은 동남아나 일본과 중국 등의 여행 얘기를 하는 삶. 뚜렷하게 뭘 잘하는 것은 없지만 두드러지게 뭐가 못난 것도 없어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한뭉치의 공감지대는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삶.


졸업 후 집에만 있는 하루하루가 지루해서 서울소재의 대학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특강을 신청했다. 저녁 시간 마스크를 끼고 버스에 올라 30분 거리의 특강을 들으러 가는 길, 대학 건물 2층 계단을 오르는 게 숨이 차서 눈물이 핑 돈 날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학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 수업을 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능력도 그다지 대단치 못했지만, 아이들과 어울리고 학부모에게 유려한 말솜씨로 수업을 설명하는 일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이 무렵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이 가만히 서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몸에 근육이 충분하지 않아 똑바로 서 있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 대학원을 가고 더 시간이 지나면서 출판사에서도 잠깐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웹소설 PD라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담당했던 웹소설 작가가 병상을 떠난 후 두 번째로 만난 남자가 되었다.


연재 시간이 늦은 작가를 기다렸다가 당일 치 연재분을 올리고 퇴근하는 길, 회사 작업실에 있던 웹소설 작가와 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가을이었다. 우리는 고즈넉한 동네의 미술관 앞에서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일을 하면서도 미래를 걱정하던 시기라 동갑인 웹소설 작가에게 금세 친밀감이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첫만남에 나의 병력을 밝혀버렸다.


남자는 조용히 내 얘기를 듣다가 '존경스럽다.'라고 말했다.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반응이었다.


그렇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해낸 거구나. 수술 후 응급실에 누워 나흘 넘게 물 한모금을 못 마신 것도, 갈증을 못 이겨 물에 적신 거즈를 입에 물고 하루를 버틴 것도 존경스러운 일이었구나. 나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아빠의 눈과 속이 아파 먹기 싫다는 버섯을 음식에 몰래 넣는 엄마의 고집을 견디면서 한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존경스럽다. 그말 한마디로 모든 게임이 끝났다.


그리고 사귄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와 나는 6평짜리 나의 자취방에서 새벽에 이별을 고한다. 결혼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남자와 아이를 낳지 않아도 달라질 게 없다고 믿는 여자의 싸움은 애초에 답이 없었다.


*이미지는 미드저니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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