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요] 시리
알츠하이머, 치매란 정말 힘든 병이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우리 할머니도 치매가 있으셨다.
시골에 가는 날이면 할머니는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니가 누꼬?" "난, 암것도 몰라."
"할머니, 나 영애예요."
"영애? 니가 영애가? 모르겠다."
할머니는 딸, 아들, 손자, 손녀...
아무도 못 알아보셨다.
하지만, 늘 표정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엄마는 20살에 아빠와 결혼했다. 20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우리를 키우셨다. 아빠는 24살, 지금의 24살 청년들처럼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였다.
시골에 있는 것보다 도시로 나가고 싶어 했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동네에서 오토바이도 가장 먼저 구매하고, 농기구들도 좋은 게 있으면 대출을 내서라도 구매했다. 트럭도 동네에서 두 번째로 구매해, 읍내에 나가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태우고 다니셨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못마땅해했다.
오토바이를 살 때도, 트럭을 살 때도 엄마에게는 의논 한 마디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동수단이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예전에 엄마가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쌀통에는 쌀은 다 떨어졌지, 니 아빠라는 사람은 동네 가게에서 어른들과 노름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고 다녀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산을 넘어 외할머니댁에 가서 쌀을 얻어 온 적어 있다."
그 먼 길을 산 넘어 걸어서 갔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엄마의 고생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아빠가 치매에 걸렸다. 아직 중증은 아니지만, 엄마는 벌써부터 힘들어하고 계신다.
아빠의 고집과 돈에 대한 집착은 치매로 인해 10배로 증폭됐다.
오토바이, 차, 기계 사는 데는 돈을 아낌없이 쓰면서도, 사소한 것에는 돈을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그 성격이 더욱 극단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결국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누군가 아빠에게 공짜로 핸드폰을 준다며 피싱을 걸어왔다. 당연히 아빠는 낚였고, 옆에서 엄마가 아무리 얘기해도 사기가 아니라며 끝까지 피싱범의 말을 믿었다.
겁나고 답답한 엄마는 우리에게 연락해 어떻게 좀 해보라고 했지만, 멀리 있는 우리는 전화로 아빠를 설득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자식들의 말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피싱범을 만난다는 날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경찰들이 빨리 출동해 아빠를 설득해 겨우 사건이 마무리됐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아빠를 돌보겠다고 하시는 엄마다.
70이 넘은 나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니.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워낙 시골이라 학생 수가 없어 학원이 문을 열지 않았고, 어느 정도 학생이 모이면 문을 연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대기만 걸어 놓은 상태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반대다. 하지만 엄마가 하고 싶어 하니 말릴 수는 없었다.
"최대한 아빠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 돌봐야지."
엄마의 이 말에 가슴이 쓰려왔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치매 환자 가족 중 65세 이상 배우자가 주 돌봄자인 경우가 42%에 달한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의 현실. 그 속에서 엄마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치매는 환자만의 병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병이다. 특히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에게는 더욱 잔혹한 시험이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70세의 나이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한다.
그것이 바로 엄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끝까지 사랑으로 버텨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