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조용히 똑똑똑 소리가 울린다. 우리 집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주인집 아저씨밖에 없다. 게다가 주인집 아저씨는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많은 여학생들을 상대하는지라, 상대방이 겁먹지 않게 노크 소리와 함께 본인임을 밝힌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가 없다. 열어나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들린다. 아직 제대로 들리지 않아 정확히 못 들었지만 본인을 밝히는 사람이라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나니 편지 봉투 몇 개를 들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서 있다. 그러면서 이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나의 이름이 맞는지를 묻는다.
프랑스는 행정이 복잡한 나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계좌와 연결된 카드를 만들려면 최소 3일에서 길게는 1개월이 넘게 걸린다. 그리고 그 카드조차도 우편으로 도착하고 이때 우편물을 받지 못하면 복잡한 행정 처리를 한 번 더 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우체부는 우편물의 동호수를 확인하기보다는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한다. 그래서 대부분 관리인 아저씨나 본인이 이름을 적어 우체통에 끼워 넣는다. 하지만 우리 집은 우체통에 이름을 넣는 칸이 없다. 관리인 아저씨도 도통 만날 수 없어서 불안함을 증폭된 채 은행에서 카드가 도착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아침, 혹시라도 나의 이름을 관리인 아저씨가 모를까 봐 우편물 칸에 나의 이름을 살짝 올려 두었다.
나의 이름은 한국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이름에 속하는 데, 이곳에서는 더 신기한 이름에 속한다. 성은 프랑스의 소유 형용사 중 하나이고, 이름은 프랑스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 중에 하나다. 하지만 성수가 일치해야 하는 이 나라에서 나의 이름은 성수가 일치하지 않는 신기한 이름이다. 그 이름을 종이에 써서 우편물 칸에 올리면서도 관리인 아저씨가 청소를 하면서 누군가의 장난이거나 쓰레기라고 생각할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오전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그 쪽지는 정말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요한 우편물이 올 예정이니 버리지 말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나의 이름을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그것을 보고 관리인 아저씨가 집에 방문한 것이다. 본인이 관리인이라면서 걱정 말고 너의 우편물을 꼭 전해줄 거라는 말을 했다. 우리 아파트는 우체부가 통째로 우편물을 놔두고 가면, 본인이 이름을 확인해서 현관문 밑으로 넣는 방식이라며 걱정 말라고 재차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혹여나 주인을 찾지 못한 우편물 속에 나의 우편물이 있을 수도 있다며 몇 개의 편지 봉투를 들고 올라온 것이다.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들은 게 처음이었다. 너무 따뜻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떼기 전까지 한동안 나의 이름은 우편물 칸에 붙어있었다.
진짜 이놈의 프랑스는 나를 한 번은 울리고 한 번은 안심하게 만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