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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Sep 10. 2020

같이 사는 법

혼자 사는 것 만큼이나 즐거운 

1. 다름을 인정하기

8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애와 결혼을 오가며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이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눈물 콧물 쏙 뺀 드라마 같던 시트콤 같던 장면들..


우리 사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사랑과 전쟁이었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다.

좋을 땐 세상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이었다가, 싸울 땐 어쩌다 저 사람을 반려자로 만나서 이모양으로 싸우고 있을까. 내일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나가리라 다짐도 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한 연애 시절이지만, 심하게 싸운 뒤 야심한 시각 차 안에서 포트맥 강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가려면 지금 가.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야.' 라며 눈물콧물 질질 흘리며 쿨한 척 하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신파도 찍어보고

결혼 뒤에는 결혼을 앞 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의자를 집어 던지고 한 겨울에 가출을 감행하는 그야말로 개싸움도 해보았다.  


물론 불과 불이 만난 우리 둘의 성격 상 싸우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많은 싸움 뒤에 우리는 깨달았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너는 너 나는 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엄청 흔한 말이고, 모든 인간관계를 다루는 콘텐츠에 기본적으로 나온다. 그만큼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필수적 요소란 얘기는 아닐까.

그런데 이 고작 7글자 ‘다름을 인정하기’는 생각보다 허벌 어렵다. 


특히 연인이 되어 사랑을 시작하고 서로에게 푹 빠지면 대부분 이런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그(그녀)는 나랑 완전 비슷해. 식성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완전 쌍둥이인줄 알았어!’ 


나도 그랬다. 나의 반려자는 나랑 똑같이 배우길 좋아하고 돌아다니길 좋아하고 깔끔하고 식성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는 걸 좋아했지만, 잠이 많았다. 

돌아다니길 좋아했지만 관심사가 달랐다. 

깔끔했지만 나는 먼지에 그는 정리에 집착하는 다른 스타일의 깔끔함이었다.

식성은 그가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뿐만 아니었다.

나는 감성적이고 그는 이성적이다.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인데 그는 한결같이 올곧다.

나는 꽤나 즉흥적인데 그는 완전 계획적이다.

나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기면 바로 사지만 그는 내가 질려할 때까지 비교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점은 아마 끝도 한도 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왠걸 시간이 지나고 보니 완전 극과 극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닌 타인이니 다른 사람인 것은 당연한걸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으리 모른다. 하지만 사랑의 호르몬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연애를 넘어 동거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생각보다 서로 많은 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다른 점이 나의 생활반경이나 패턴 나아가 가치관까지 침해하기 때문에 ‘아-다르네.’ 하고 넘어갈 수 없는 복잡한 문제 혹은 싸움으로 이어진다.

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짜증나고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아주 쉬운 예를 들면,

친구들끼리 모이면 신혼 단골 주제로 나오는 

왜 양말을 말아놓지? 왜 잠옷을 자주 안 갈아입지? 왜 옷걸이를 한 방향으로만 걸어야 하지? 왜 외출 후에 바로 씻지 않지? 라는 생활 패턴에서부터


왜 돈을 계획적으로 쓰지 못하지? 왜 항상 10분씩 늦지? 왜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항상 많이 시키려 하지? 왜 주말에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지? 등의 가치관과 연결되는 문제도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왜’ 라는 의문은 품을 수 있다. 

나아가 나는 안 그러는데 쟤는 왜 그러지? 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면 재고 해 봐야 한다. 

당연하다! 저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유전자를 받은 엄마, 아빠도 나랑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데 완전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타인과는 더더욱 다를 수 밖에없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래?' 하는 순간 싸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싸움은 해결책이 없다. 

둘 중 하나가 무조건 서로의 습관이나 생각을 따라주기 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로 쉽게 바뀌지 않고, 건강한 관계에서의 사랑이란 맹목적 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번의 개싸움 후에 우리는 변하기 시작했다.

'왜'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나는 이렇게 자라고 생각해왔을 뿐.

그리고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을 했다. 

그의 부모님의 어떤 면이, 어떤 생활환경이 이러한 사람으로 만들었구나. 그래서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구나. 

그렇게 우선 상대방의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나면 설사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고 화를 내거나 싸우는 일도 많이 줄었다.


함께 살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이기에 인정하고 맞춰나가는 수 밖에

때때로 서운한 감정이 들지만 내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려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오늘도 1.7번 정도 서운했던 것은 그에게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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