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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갑니다 May 16. 2022

나도 피하지 못했다. 산후 우울증

우울증은 남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엄마가 되고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0개월 

그리고 나는 완연한 백수가 되었다. 완전히 경제활동인구에서 빗겨 나버린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서 퇴사했다.

아기와 나의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에 조금 더 집중을 하고 싶었다.

막연한 불안함이 없지 않았지만, 사회로 복귀하고 싶을 때 그때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겠지라고 나를 토닥였다.


언제든지 다시 일할 수 있는 전문직도, 특별한 기술도 없지만 그래서 마음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되었으니까, 뒤 돌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아가가 있으니까 그걸로 괜찮을 것 같았다.


아기와 함께 하는 하루가 근사하지는 않아도 육체는 바쁘고, 정신은 혼미해 다시 일할 여유를 생각하기도 어렵고 그럼에도 아기의 사랑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간질간질 귀여워져서 아기가 조금 클 때까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버틴다'라는 표현 자체가 괜찮지 않은 나를 대변하고 있었나 보다.

얼마 전 적성검사를 받았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까지 적성을 찾고 있는 내가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나를 알고 싶었기에 찾아가 보았다. 수십 가지의 검사와 더불어 진로적성검사에서 '심리' 쪽을 같이 상답받고 싶은지에 관해 체크하는 부분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했다.


나의 건강한 정신상태를 누구보다 자부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당연히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본인의 우울감을 자각하지 못하는 마취된 코끼리와 같은 상태라 했다. 

와- 밝은 미소의 아이콘이었던 내가 우울증이라니?

5시간의 컨설팅 중 여러 부분에 있어서 놀랐지만, 내가 상당히 우울한 상태라는 그 상황에 가장 신선하고 놀라웠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지난 3,4월 이상하리만치 자주 깜빡이고, 항상 너무 피곤하고 잠도 자꾸 오고 그랬다.

나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낮에는 자꾸 멍하니 있고 아기랑 놀 때에도 영혼이 없는 것 같은 상태도 자주 있었다는 엄마의 말까지 들었더니 진짜였다. 나도 우울증이었다.


며칠을 두고 찬찬히 생각하며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의 다양한 감정 중 우울한 감정이 많이 올라와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잘 다독여주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회로 돌아가고 싶어 아기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바꿔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몇의 아기 엄마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보았다. 전업 주부, 워킹맘 너 나할 것 없이 공통된 답변이 돌아왔다. "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가끔 우울한 감정이 치고 올라와. 현대병이지 뭐, 특히나 애엄마는 어쩔 수 없다." 단순히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우울할 수 있고, 특히나 하루아침에 엄마가 돼서 집에 눌러앉게 된 신생 엄마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상황을 극복할 의지가 있다. 

나는 상황을 극복할 의지가 있다.

나는 상황을 극복할 의지가 있다.


엄마와 복귀 사이 모든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초보 엄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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