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 남편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
시어머니.
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전통적인 시어머니상이란 어떤 것일까.
무서움? 차별? 억울함? 매서운 눈? 어려운 분? 잔소리?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어떤 단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단어가 풍기는 느낌이 있다.
"시어머니"
명사이지만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단어다.
연애를 굉장히 오래 한 우리 부부.
결혼 전부터 시댁에 종종 놀러 가곤 했고, 그때마다 시부모님께서는 내가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고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아, 현대의 시부모님이랑 이런 거구나. 결혼해도 당연히 고부갈등이란 없겠지 편하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을 앞두니 사소한 일에서 서운하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아, 이래서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구나' 생각했었다.
온갖 허례허식을 치러내며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의 마음에, 공포심과 불안함, 두려움 그 막연한 먹구름들이 짖게 드리워졌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온갖 명절, 가족 모임, 소소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자라오며 당연히 여기게 된 '남녀평등'과, 부모님 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며느리의 역할' 사이의 굉장한 거리를 체감하며,
"불공평"하다는 점에 억울해 몸서리쳤던 나였다.
"왜 여자만 음식 하고, 남자는 앉아서 수다만 떨지?"
"요리는 여자들이 했으면, 설거지라도 남자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평소에는 바깥일이 남자일, 집안일이 여자일이라 하면, 명절에는 남자들 바깥일 안 하는데 여자는 왜 집안일해야 하지?"
"누구를 위한 명절이지? 여자는 명절에 쉬지를 못하고 더 힘드니 명절이 당연히 싫지"
"명절 없어졌으면 좋겠다"
"명절에는 왜 시댁부터 가지? 우리 집엔 딸밖에 없어서 아무도 없는데"
"나는 시부모님 생신날 상다리 휘어지게 생신상 차리는데, 남편은 돈 써서 선물 사드리면 끝인가?"
"남자는 장인 장모님 댁 가서 손님 대접, 귀한 대접받는데, 여자는 왜 시댁 가서 종 취급, 하인 취급받아야 하지?"
"내가 식모 살러 시집 온건가?"
"나도 우리 집 귀한 딸인데 왜 맨날 내가 마지막에 앉아서 식은 밥 먹어야 하지?"
"왜 뭐 필요하면 남자들은 직접 안 갖다 먹고 여자를 부려먹지?"
"쉬는 날은 남자만 쉬는 날이고 여자는 삼시세끼 차리고 치우고 또 차리고 또 치우고 하는 날인가"
"내가 이 집에 먼저 시집왔는데 내가 더 손윗사람인데, 하물며 나이도 내가 더 많은데 아가씨 남편은 왜 손님 대접이고 내가 음식 차려서 갖다 바쳐야하지? 남자이기 때문에?"
"이 집에 여자 하나 시집오고, 남자 하나 장가 왔는데, 여자는 종이고, 남자는 손님이구나"
"어머님은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대놓고 내 자식만 소중하다 티를 내시는 건가"
글을 적다 보니 저런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돌이켜보면 '무엇이 부당한가, 어떤 점이 불공평한가, 어떤 말실수를 하시나'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남편한테는 소중한 분이니까, 나와 시어머니 사이가 안 좋으면 남편이 제일 불행할 테니까... 시간이 약이겠거니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좋은 점, 감사한 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나쁜 시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래도 우리 시부모님은 참 양반이셔...'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곤 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름의 노력에도 '이래서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남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상처도 받고 많이 울었다. 눈이 부을까 화장실에 연신 찬물 세수를 해대고, 산책 다녀온다며 찬바람을 맞으며 '아, 남편이 아무리 잘해줘도 시댁은 참 외로운 곳이다' 생각했다.
결혼하고 3년 차. 아이가 생겼다.
남자아이.
막연하게 친정 부모님께는 항상 '아 내 부모님께서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내셨을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시부모님을 뵐 때는 '아들을 빼앗기기 싫은, 며느리를 평가하려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커오면서 들은 수많은 "시댁괴담" 때문일까.
왜 시부모님도 한 아이를 열심히 길러내신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아이를 가지고, 뱃속에 품고, 낳고, 기르며.
아픈 손목, 발목,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며.
밤새 젖 물리고 안아 재우고 조용히 눈물 훔치며.
한 아이를 길렀던.
그 시절,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렸을 한 여자.
우리 엄마, 그리고 시-엄마.
아이를 낳자, 시어머니가 달라졌다.
"시어머니"가 아닌 "시 - 어머니"가 되었다.
이제 친정엄마도, 시-엄마도 그냥 "엄마"로 보인다.
국어사전에 기재된 바처럼, 시어머니란 "남편의 어머니".
내 남편을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워주신 분.
몸과 마음을 바쳐 평생 내 동반자를 만드는데 인생을 쏟으신 분.
내 시선이 달라진 것일까, 내 진심이 달라져서 어머님이 느끼시는 것일까. 그래서 어머님도 달라지신 것일까.
그냥 요즘은 존경스럽고, 감사하고, 짠하기도 하고, 시어머니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찡하다.
어머님도 시어머니가 처음이라서.
저도 며느리가 처음이라서.
겁나고 두려워서 몰라서.
생각과 다르게 마음과 다르게 상처도 주고받으며
각자 몰래 참고 견디고 인내했을 시간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한 발씩 물러서 양보했을 서로 모를 일들.
그 배려가 쌓여 지금은 진심으로 존경하는 나의 '시-어머니'
지금도 저 모르게 많이 참아주고 계시겠죠?
멋진 아들 키워 제 짝으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 아들 멋지게 키워서 예쁜 며느리에게 잘 보내줄게요.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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