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를 잃지 않는 것

고급진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기

by 이여름


살다보면 잃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품위를 잃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그러나 이창동 감독 영화 중 ‘시’의 할머니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강남역 지하철을 내려오다가 한 여성 노숙자를 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모순적이었다. 여성이 동냥받고 있는 가방이 루이비통이었다. ‘저걸 팔면 길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타인의 행동에는 지나치게 관여하지 말자는 생각에 다다라 그냥 지나쳤다. 그 여성은 왜 루이비통 가방을 팔지 않았을까? 이것만큼은 잃을 수 없다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영화 소공녀의 이솜이 집은 없어도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못했듯,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이 빈털터리에서도 마티니는 포기하지 못했듯. 어쩌면 그것도 그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품위.

어렸을 때부터 ‘취향은 고급지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절대적인 부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어떻게 됐든 취향은 고급지게, 취미 또한 고급지게 살아야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오락이나 텔레비전 보다는 책이나 여행을 택하도록, 같은 가격의 옷이라도 최대한 질이 좋은 옷을 택하도록. 가령 10 만원의 돈을 옷을 사는 데에 써야한다면, 7천원 옷 여러벌을 사기보다는 질 좋은 한 벌의 옷을 택하도록 . 똑같이 영화를 보는 데 시간을 써야한다면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일컫는 영화를 보고 검증된 영화를 보도록. 그렇게 시간과 돈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배워왔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기, 책과 영화를 가까이 하기, 취향의 탐구는 꾸준히 하기.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회 철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의 계급화를 주장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취향을 조사해 분류했고, 사회적 계급이 어떻게 취향을 형성하고 관리하는지 증명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많은 유산 중에 가장 유명한 저서는 바로 "구별 짓기"로, 취향의 계급화에 대해 논리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의 연구가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도 문화 취향에 대한 계급적 구분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일맥상통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계급은 이렇게 나뉜다.

상류계급 (미와 여유로운 삶을 추구)

공간: 개인의 물리적 공간이 넓음

취미: 명성있는 음악가의 클래식 공연,요트,펜싱,골프,수집,학습

체형:잘 가꾸어진 체형을 유지하고 전문가에게 꾸준한 관리를 받음

음식: 가공음식은 기피하며 잘 요리된 음식을 섭취. 신뢰할 수 있는 원산지를 선호

중간계급(절제를 미덕으로 하고 배움을 추구)

공간: 대체로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 집을 소유함

취미:연주음악 감상, 문화공연 감상, 독서, 검도, 수영, 악기 연주등

체형: 대체적으로 잘 가꾸어진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음식: 요리된 음식을 선호하지만 필요에 따라 가공식품이나 간편식 샐러드를 선호한다.

민중계급(스타일이 무시되고 가성비를 추구)

공간: 자가 소유는 없고 집에 머무는 비용을 지불함

취미: 여가 시간이 짧음.축구,농구, 텔레비전, 복권

체형: 체형 관리가 잘 되지 않음

음식: 가성비. 싸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부르디외의 연구를 보면 이처럼 유사한 취향을 공유한 집단이 동일한 '계급'을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계급 차이는 곧 취향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는 곧 생활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노가다 판에서 일하는 가난한 청년이 어느 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에 꽂혀, 그날부터 차비와 점심값을 아껴가며 중고 클래식 LP를 사모을 수 있었다. 결국 취향이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기호나 규율이 아무리 방해해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과 함께 삶을 더 잘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김경"

그러나 반드시 취향이라는 것이 계급에 따라 차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기호, 규율이 방해하더라도, 자기만의 경험을 통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의지의 차이이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가꾸고 취향을 탐구하는 것에 부지런하다면, 그것은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나를 빛나게 하는 자산이 되어있다. 그렇게 나를 빛나게 하는 취향들은 시간이 흘러도, 비록 내가 절대적인 자산이 부족하더라도 여전히 나를 반짝이게 하는 자산으로 남아있다. 같은 값이라도 퀄리티가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일, 무작정 가성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질 좋은 서비스에 투자하는 일. 좋은 소비는 한순간의 소비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남는다. 무조건 가성비 챙기는게 정답은 아니다. 조금 더 얹더라도 질 좋은 경험을 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게 중요하다 . 무조건 효율성과 신속을 따지는 세상이 아니라 조금 더 천천히 가더라도 아름답고 여유로운 세상이 왔으면.

대화를 나눌 때 ‘이 사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다. 대중 영화가 아니라 아카데믹한 영화를 좋아하고, 대중 음악이 아니라 어느정도의 탐구를 필요로 하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냥 옷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확고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궁금해지고 그 사람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는 이끌림을 가지게 된다. 이런 것들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세련됨을 가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취향을 지켜내는 일이란 얼마나 소중한 일이란 말인가. 삶의 대가는 스스로의 취향을 명확히 인지하고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취향 또한 파고 들되 남의 취향도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품위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구별짓기를 통해 차이를 끊임없이 재생산 하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를 삶의 대가로 인식하고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