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코트를 여맨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일

비폭력 대화를 읽고

by 이여름


추운 겨울이 왔다. 어느덧 단단하게 코트를 여매고 총총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본다. 코트를 여맨 사람들의 속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있고, 어떤 마음이 있는 것일까? 괜스레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궁금해진다.


살아가는 일은 폭력에 노출되는 일이다. 일단 눈을 뜨고 삶을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어떠한 폭력 속에 노출된다. 이를테면 도시의 출근길 속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일, 친구와 늦은 약속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혹시 누군가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일, 일하고 있는 직원의 기분이 좋지 않아 서비스를 이용하는 나까지도 기분이 안 좋아지는 일은 나조차도 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마음으로 스며들어와 상처를 주는 폭력이다. 우리는 대개 폭력성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폭력 그 자체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여린 마음을 단단한 코트로 감춘 채, 다치지 않기 위해 꽁꽁 감춘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실천이라도, 누군가 계속해서 비폭력인 것을 지향하는 일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사실 폭력적으로 사는 일은 그렇지 않은 일보다 더욱 쉬운 일이다. 타인의 기분을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그에 비해 타인의 기분을 신경쓰며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그만큼 신경을 써야하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정한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도덕성을 지키며 타인을 품으며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일이란 말인가. 수없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 남에게 쉽게 상처를 내뱉는 사람들이 가득한 와중에도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양심을 지키며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일은 인간이 본능만을 추구하는 동물이 아니라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일일 것이다. 이성을 지닌 존재의 도덕과 관용, 그리고 사랑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몇 안되는 소중한 가치이자 도구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비폭력 대화를 지향하며 타인에게 폭력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그렇게 나는 비폭력 대화를 배우기 위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이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소중한 연인과의 이별 덕분이었다. 서로를 무척 좋아했던 우리였지만 서운한 것과 불편한 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몰랐다. 우리는 성숙한 대화에 서툴렀고, 그것은 서로의 오해의 골을 깊어지게 만들었다. 오해는 쌓이고 쌓였고,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맞이했다. 그런 이별을 겪은 뒤 나는 대화를 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소중한 사람을, 그리고 현재 나를 사랑하는 인연들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다.


책은 비폭력 대화의 스킬과 이를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을 읽으며 내 자신이 그동안 가져오고 있었던 언어 습관과 태도에 대해 많이 돌아보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참지 못하고 망쳐버린 관계, 미숙해서 상처를 준 관계들이 생각이 나면서 이 책을 조금 더 빨리 읽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부분이 인상 깊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의 욕구를 표현하기’ 부분이었다. 책 속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화가 나고 짜증나는 상황 속에 결국 자신의 욕구가 들어있다는 것을 인식한 뒤 그 감정을 툴툴 털어버리게 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표현하지 않을 것을 주입받는다. 우리에게 감정 표현을 하거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미성숙한 것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진 채로 살아간다. 무조건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책에서는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욕구를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무작정 상황을 회피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더욱 성숙하고 좋은 길이라고 말한다. 회피는 결국 똑같은 상황을 또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은 다시 상황이 반복되리라는 가능성이 덜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내가 욕구를 느끼는 상황 속에서 아예 표현조차 하지 않는다면 갈등의 골은 깊어질 뿐이며, 내 욕구를 표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성숙하게 나의 느낌과 요구를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 대화법을 실제 나의 상황 속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와 살면서 힘든 부분이 있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명이 서로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불편함이 쌓이고 쌓여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결국 방을 변경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 찾아가 방을 바꾸어달라는 요구를 했다. 다시 사감 선생님께 돌아온 답변은 ‘룸메이트와 함께 이야기를 해보셨나요?’ 였다. 그때 나는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의 룸메이트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비폭력 대화에서 본 대화 방법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용기를 낸 나는 룸메이트와 대화를 시도했다. 앞으로 학교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마주칠 그녀에게 이런 식의 미성숙한 갈등 해결은 나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책에서 읽은 비폭력 대화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리 오늘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룸메이트는 흔쾌히 나와의 대화에 동의를 했다. 그리고 나는 책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나에게 발표 수업이 있다는 걸 알리지 않고 발표 수업을 한 것이 많이 서운하고 속상했어.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서 피곤한 상황이었는데 강제로 기상을 하게 되었거든. 사실은 오늘 뿐만 아니라 이런 점이 내게는 스트레스여서, 내가 이런 부분에 불편함을 겪고 있음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앞으로는 이러한 부분을 배려해줄 수 있을까? 나도 네가 원하는 것들이 있다면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할게.”


룸메이트는 네가 그런 부분에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며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그 후로 룸메이트는 내가 불편함을 겪는 행동에 대해 신경 써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동거하는 사이로서 타지를 떠나온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동안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것 이라고 생각해 온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후로 나는 내 욕구를 성숙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점점 터득해가기 시작했다.


‘욕구 표현하기’ 부분 뿐만 아니라 ‘공감하기’ 부분도 인상이 깊었다. 살아가다 보면 공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내 감정을 이야기 함으로써 공감이 받고 싶었던 것일 뿐인데, 공감은 커녕 냉소적인 조언이 돌아오면 괜히 더 기분이 우울해지고는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속상한 일에 더불어 혼나는 기분까지 받게 되는 것은 더 나를 축 처지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타인에게 제대로 공감 받지 못했던 모습이 보였고, 더불어 내 자신도 타인에게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였다. 책에서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바른 공감 방법은‘그래서 네가 —한 기분을 느꼈겠구나. 네가 그렇게 느꼈다니 나도 정말 속상해.’로 먼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는 표현을 해준 뒤에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 좋아했던 연인과 헤어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애인이 공감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서운하고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을 쉽게 표현하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침묵의 상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긴 채 끝을 맞았다. 우리가 서로의 요구에 대해 설명하고 부탁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공감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우리의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인연은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새로운 인연과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평화로운 언어의 물결 속에서 헤엄치며 살아가고 싶다.


우리는 의도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살아가면서 종종 우리는 절대 상처 주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만든다. 가령 내가 무척 정신이 없어서 타인의 고통을 모르고 지나치는 일, 누군가에게는 없는 것을 과시하고 자랑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사람이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일. 우리는 이런 상처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을 통해 계속해서 타인과 공존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러한 세상 속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바로 비폭력 대화가 말하는 핵심이다. 단단하게 코트를 여맨 사람의 코트를 벗게 하는 방법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추운 바람이 불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럴수록 그 사람은 코트를 더욱 꽁꽁 여맬 뿐이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의 벽을 녹이고 코트를 스스로 벗도록 만드는 것은 따뜻한 햇살이다. 그러니 우리가 따뜻한 대화를 통해 타인의 벽을 녹이는 일은 얼마나 의미있고 중요한 일일까?


누군가 내게 한 말 중 가장 기분 좋았던 칭찬은 이런 칭찬이었다. “추운 겨울 속 갑자기 붕어빵이 먹고 싶어 길을 헤매고 있었어.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붕어빵을 파는 곳이 나오지 않는거야. 희한하지. 먹고 싶지 않을 때는 그렇게 잘 보이던 것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아. 아무리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려고 하는데, 언니가 짜잔 하고 나타나는 거지. 포기하지 말자. 찾을 수 있어. 그렇게 힘찬 언니가 등장하자마자 붕어빵집이 짜잔 하고 나타나. 그리고 붕어빵을 먹는데, 첫눈이 내리는 거지. 언니는 그런 사람이야. 아무리 추운 곳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희망을 가지고 사람들의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사람, 단단하게 싸맨 코트를 벗기고 따뜻한 세상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비폭력 대화를 읽음으로써 내게 일어난 변화는 웬만한 일들을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나는 ‘대화를 해봤자 무슨 일이 있겠어’ 라는 태도로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끝끝내 참지 못하고 조용히 폭발한 뒤 상황을 등져버리는 식으로 행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코트를 벗게 만드는 대화법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비폭력 대화를 실천 속에 옮기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실행함으로써 더욱 넓게 선한 대화 방법을 알리고 싶다. 나는 비폭력 대화를 통해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가 충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대화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그리고 그런 믿음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단단한 코트 속 마음이 보여지기를, 그리고 그 마음이 소중히 다루어지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