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

장영희 선생님의<문학의 숲을 거닐다> 을 읽고

by 이여름


마음이 공허하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 때면 자연스레 도서관을 찾아 책에 파고 든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그 속에서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 달빛 아래 아름다운 남녀의 사랑에 빠져들었고, 작은 아씨들을 만나 조와 같이 단단한 자아를 가진 여성을 꿈꾸기도 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그 시절 5.18의 광주로 떠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며 그 시절 한국으로 떠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면 외로움과 걱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내가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던 특별한 것은 지루한 일상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었다. 하루 종일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마주친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기분을 환기하기도 했으며, 혼자 지나가는 길 속 떨어져 있는 낙엽을 보고 발을 멈춰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했다. 삶이란 본래 힘든 일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희망을 잃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그러한 역할을 한다. 희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일. 너무 추워서 비린내가 날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사랑하게 해주는 일. 문학을 통해 나는 추운 겨울 속에서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꿈꾸고 언젠가는 떠날 여행 속 파리의 박물관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우리는 문학을 읽으며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작품은 분명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내 안에 있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을 발견하고, 사랑을 만나고 아픔을 만난다. 작품 속 인간이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통해 ‘인간이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너와 내가 같고,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로의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른다. 문학을 접할 때면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나 혼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구나,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안정감. 그 안정감 속에서 다시금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나에게 펼쳐질 미래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좋은 일은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이다. 어디든 좋은 사람이 존재하며 나쁜 사람도 존재한다. 누구나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우리가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사실 개인의 삶에 따라 어떠한 문학은 내게 깊게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문학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남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작품이 내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반대로 남들이 별로라고 하는 작품이 내게는 최고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작품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문학 이론을 읽힌다. 그리고 그 이론을 찢도록 만든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이론! 문학은 이런 이론들로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야!”


나는 2018년도에 시작한 블로그에서 책과 영화, 음악을 접한 뒤 감상을 쓰는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서 일기를 끄적이던 블로그였는데, 어느덧 크기가 커져 지금은 하루에 100명 이상씩은 꾸준히 방문하는 블로그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책을 읽은 뒤 그 감상을 꾸준히 써내려가지만, 어떠한 책임감과 부담을 느끼고 있다. 더 좋은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책임 속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는 그러한 책임 속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문학 교수로서 비평적으로 ‘고전’의 요건에 어떻게 걸맞는지 분석하기 전에 단지 하나의 독자로서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어떻게 와닿았는지,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그래서 그 작품들로 인해서 내 삶이 얼마나 더욱 풍요롭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나는 유려한 지식과 말솜씨로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은 하지 못한다. 다만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스스로 작품을 접한 뒤 느껴지는 감정을 온전히 적어내는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의 크기로 작품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눈에는 한 없이 좁은 시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책을 접하는 이유는, 내 삶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계가 가득한 나의 글이지만 앞으로도 부단히 써내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올해 나의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기업에서 뽑혀 고등학생을 일주일에 3시간씩 멘토링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수업의 내용은 대부분 국,영,수였다. 그것은 정말이지 따분하고 전형적인 것이라 별로 와닿지 않았다. 미리 나와있는 교사용 교과서를 읽거나 답지를 읽은 뒤 수업 분량만큼만 공부하면 되는 일.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준비하게 된 수업이 바로 글쓰기 수업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것, 남들보다 그나마 자신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교육 과정에 속한 지식보다는 더욱 빛나는 인생의 가치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우리 시대 속 잔재하는 판옵티콘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며 자유롭게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능동적으로 지식을 쌓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아이들은 그동안 배워본 적 없는 교육 속에서 눈을 번쩍 뜨고 ‘선생님을 만나게 돼서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영화, 책, 신문 등 다양한 곳에서 자료를 긁어와 아이들에게 풍부한 수업을 하려고 애썼다. 지금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중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게 키팅 선생님이 아닌 또 하나의 롤모델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이 매우 많았다. 이번 주에는 아이들에게 서로에게 쓰지만 누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익명의 편지쓰기 과제를 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학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끈다. 세상에는 부와 권력을 차지하려 하는 욕심쟁이들이 가득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낭만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문학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사실 나에게 있어서 영문학은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것이었다. 한국 문학만 좋아했으며, 본래 국어국문학과를 꿈꾸던 나에게 이 전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시를 따라 지긋이 눈을 감고 아무도 없는 호수를 상상하는 일, 그리고 고요한 새소리를 상상하는 일, 아메리칸 드림 속 미국으로 떠나 개츠비의 죽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일은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내가 낭만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교수님의 가르침은 내게 있어서 영문학을 택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주었다.누군가 내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그것은 비단 이성에 대한 사랑 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관한 사랑이기도 했다. 나는 더 많은 활자들을 사랑하고,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한 문학 평론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 이미 문학과 영화를 통해 정신적인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삶의 시간 속에서 내가 택한 것은 바로 정신적 여행이다. 나는 매일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한다.”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는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내가 문학을 통해 얻은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져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책을 읽는 순간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내 스스로 내 삶을 고독하지 않게 꾸려나갈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혜를 책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anted to live deliberatel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ve, and not, when I had co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Henry David Thoreau


문학의 숲을 읽으며 장영희 교수님과 함께 여러 작품들의 정취에 푹 빠져 헤엄칠 수 있었다. 수업에서 배운 에밀리 디킨스의 시속에 빠져들기도 했으며 배우지 않은 작품들에도 호기심을 가지고 빠져들 수 있었다. 사랑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교수님을 통해 나까지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얻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무척이나 값진 경험이었다. 이 책을 통해 한층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와 더불어 나에게 주어지는 세상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나도 장영희 선생님처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희망을 전하는 스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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