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Jan 26. 2022

사랑으로 보답하고 싶은 밤


요새는 많이 울었다. 꾹꾹 눌러담아온 감정들을 터뜨렸고 감정이 빠져나가 흩어진 자리는 공허하게 남았다.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없었고 마음이 한없이 복잡하기만 했다. 흘렸던 눈물은 어느 날은 우울해서 흘리는 눈물이기도 했지만 어느 날은 기쁘고 벅차서 흘리는 눈물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감정을 정리한 후련함에 흘리는 눈물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무섭고 부담이 되는 마음에 흘리는 눈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근은  눈물이 헤펐다. 감정이 날씨였다면 반드시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마였을 것이다. 많은 것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기간이었다.



방학이라 그런가? 학기 중에는 바빠서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쉴 틈 없이 달리던 기차를 정지하여 상태를 점검 하듯 나 또한 21년 한 해를 찬찬히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 조차도 모르게 지나쳐온 내 상처들을 보듬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마음을 다지게 되는 나날들을 보냈다. 다행인 것은 이제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더 이상 눈물이 흐르 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울었던 복잡한 내 마음이 오늘 오후 쯤에서야 후련한 마음으로 정리되어 웃는 모습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무언가 답답하게 나를 막고 있었던 것들이 풀린 느낌이었고 무척이나 후련했다.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았던 마음을 이제는 어느정도 정리를 한 것이었다.




22년을 맞아 새로운 인터뷰 두 개가 잡혔고 사회적 기업과 새로운 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담당자 분께서 정성스러운 연락을 남겨주신 덕에 차분히 그들의 의도와 목적에 대해 생각을 해본 뒤, 좋은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동의했다. 하나는 교육을 연구하시는 분께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교육 방송의 인터뷰, 하나는 신생 기업이지만 점점 커다랗게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협업 제안이었다. 무언가를 바라는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을 쏟은 것들이 이렇게 좋은 기회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져다 주니 마음이 벅찰 뿐이다.



이 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결국 진심은 통하게 되어있다는 투박한 옛날의 진리를 다시금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21년의 내 가치관은 진심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가짜가 섞인 마음은 들통이 나고 말아버린다는 생각, 감정과 태도는 결코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진심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그것만이 통한다. 악의가 섞인 마음은 사람들에게 결국 들키고 만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처음에는 나도 내 자신을 믿지 못하겠는 마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잘하고 있는 것인가 싶은 마음에 이리 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어주는 진심과 한없이 투명한 사랑, 그리고 눈물을 봄으로써 깨달았다. 정말로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사랑스러운 동생이 친구 관계가 어렵다는 말을 하며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가 해준 말도 결국 진심에 대한 말이었다.




“무엇이든 너의 마음이 중요한거야. 단순해. 네가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면 그 친구는 좋은 친구고, 그렇지 않다면 좋은 친구가 아닌거야. 네가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이 떳떳하고 진실된 마음이라면 그 친구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너 조차도 그 친구가 싫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 친구는 그걸 느끼고 널 떠날거야.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는 감정을 귀신 같이 알아차리거든.  곰곰이 돌아봤을 때 너 스스로 고마운 마음이 드는 친구에게는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기도 하고 애정을 쏟는 반면, 좋은 영향을 끼치는 친구가 아니다 싶으면 끊어낼 줄도 알아야 해. 불편할 수 있어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결국 너 자신이 진실된 사람이라면 널 믿을 사람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 한참 친구 관계로 인한 걱정을 겪는 동생에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말은 그저 그 뿐이었다. 진심만큼 강력한 것도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많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책임질 부분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어떠한 행동들도 신중하게 행동하고 말 또한 신중히 내뱉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적으로 내가 이미 어떤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음을 의미하니까. 좋은 가치를 위해 활동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연락을 주시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영광스러움을 느낀다. 문제는 내가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인지 자꾸만 의심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분들의 입장에서는 나를 좋게 봐주시고 제안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언제나 깨어있는 의식으로 예리하게 사고하고 최대한 실수하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나조차도 내 자신이 부끄러웠던 행동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내가 좋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좋은 가치를 위해 누군가와 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고민이 되는 일이고 과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2년은 시작부터 많은 것을 정리하고 비워내는 한 해였다. 먼저 가지고 있던 가방들은 3개 정도를 남겨두고 팔았다. 성인이 되었다는 기분을 내기 위해 구매한 것들이지만 최근 들어 더욱 물질적인 것들에 많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과연 그것을 두른다고 해서 내가 더욱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뼈 아픈 말이지만 물질을 구매함으로써 어떠한 환상을 소유한다는 것도 맞았다. 그때는 화려하고 세련된 내 모습이 좋았고, 그렇게 화려한 것들을 걸침으로써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환상을 가졌다. 그것이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추구하고 싶은 환상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좀 더 본질적이고 진실된 것들을 쫓고 싶다. 오래도록 남는 것. 겉이 아닌 마음 속에 남는 것.



작년은 무언가를 크게 놓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텅 빈 채로 구멍이 뚫려 채워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크게  잃어버린 것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는 답답한 마음. 하지만 이제는 그게 뭔지 알 것 같다. 바로 사랑이야. 지난 해는 그저 내 것들에 집중하기 바빴다. 오히려 내가 받았던 사랑들에 더욱  과분함을 느끼며 더 주지 못한 사랑을 후회했던  것을 보면 내가 그만큼 남을 사랑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1년은 참 많이 부끄러운 한 해였다.



하지만 올해는 좀 더 타인을 사랑하고 싶다. 내가 받은 사랑들이 너무나 크기에 이걸 돌려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쓴 소리도 하며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은 분명 사랑 있는 말임을 알아서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형태이든 내가 받은 사랑을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로, 진심으로. 좀 더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다른 정리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완전히 보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도 나 없는 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을 때에야 완전한 이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별하고 난 뒤에는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치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것만 같은 기분, 제대로 할 말도 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끝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영부영하게 끝내버린 뒤 서로 자존심만 세우느라 몇 개월이 지나도록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결말이 나지 않은 스토리로 계속해서 내 마음을 괴롭혔다.  사실은 어느 한 쪽이 연락이라도 해서 다시금 대화라도 제대로 해봤으면 하는 마음, 혹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 그만한 진심을 바쳐 사랑할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고 하루에도 수도 없이 아렸던 마음. 하지만 이제는 전혀 아무렇지 않아졌다. 그 아이와 들었던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흘렀고 함께 했던 동네만 가도 눈물을 흘렸는데 이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사실은,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기 전 까지는 모난 마음으로 그 아이가 힘들었으면 했다. 마치 그 아이가 퍼즐이라면 내가 중요한 가운데 퍼즐이라도 되는 것처럼, 영원토록 내가 그 아이 마음 속 미운 구멍으로 남아 그의 텅 빈 마음이 평생 채워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그가 평생을 힘들어 했으면, 나를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네가 나 없이 어떻게 완성이 돼. 내가 완성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너도 결국은 완성할 수 없을거야.



하지만 최근 많은 것들을 비워내게 되면서 자연스레 모났던 마음도 없어지게 되었다. 이별하는 순간에 보일 수 밖에 없었던 미운 마음과 자존심을 후회하고 내려놓게 되었다.  그 아이가 없어도 내 퍼즐이 완성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다는, 그가 아니더라도 내 퍼즐을 채울 사람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그의 행복을 바라게 되었다. 진심으로 그가 행복했으면 했다. 우리가 매일같이 서로를 애틋해 하고 , 스스로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 마법을 경험했다는 것은 결국  또다시 그런 마법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겠냐고.  그에게도 , 나에게도. 분명 그런 순간이 다시 찾아오지 않겠냐고.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했던 그때의 시간에 대해서는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추억으로 남겨두고 있을 뿐이라고. 이제 나는 그 아이 곁에 다른 사람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고,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 그래서 행복했으면. 순수한 진심 뿐인 마음을 담백하게 담아 보냈고 그에게서 답장이 왔지만 다시 답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테니까.



깔끔히 많은 것을 정리하고 시작하는 한 해. 그렇게 비워내는 만큼 새로이 채워지는 것도 많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올 한 해는 어떤 것을 마음 속에 한 가득 담게 될지 궁금하다. 이왕이면 오래도록 남아있고 따뜻한 것들이 마음 속에 담겼으면 한다.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면 여한이 없을 거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로. 올 한 해도 역시 부단하게 살아내겠지만 그 속에 많은 사랑이 자리하기를 바란다, 텅 빈 구멍이 채워지는 한 해 이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6번이나 봤다고 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