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기록 25.3.29

by 강민혁

- 미국에 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특히, 요즘 환율이 말이 아니라고 하는데 진짜 몸으로 느껴보니까 더 그렇다. 한국에서 학생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쿠션들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작인데, 잘해보자.


-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꾸만 잡아서 내일 꼭 나와달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사실 그런 게 싫다. 누군가를 축복해 주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고 감사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강요가 되는 순간부터 굉장히 멀게 느껴진다. 열차를 한 번 놓치게 되니 화가 났다. 열차를 놓치는 것도 화가 나는 일이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분개하지 않을까. 나도 쉽게 무시하고 나가기에는 그때 강단이 너무 약했던가.


내가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예수님은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 그분의 부활을 보고, 기적을 보고 많은 이들이 믿고, 그때 그 일들을 말로써 전하면서 믿는 이들이 늘어났다는데, 이건 거꾸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 나중에 인터넷 찾아보니까 뭔가 좋은 데는 아닌 거 같다. 말이 많은 곳 같은데, 진짜 그냥 조만간 몸조심 좀 해야겠는걸?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나는 다음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수학을 꼭!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아가야,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수학과에 진학하거라'의 느낌은 아니고(수학과를 부전공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은 매 순간 느끼고는 있지만...), 수학의 발전사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사람의 사고가 이렇게나 발전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알 수가 있다.


역사적인 필요성으로부터 도출된 개념들, 그것에 대한 의심, 새로운 해석. 매 순간의 알 수 없는 직관으로부터 나타난 것들을 단어로 명확하게 담기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것. 그것을 다시금 해체하여 재조립해,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 우리는 수학으로부터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음에도, 심지어는 학교과정로도 충분히 이러한 것들을 배울 수 있음에도, 성적 하나만을 위해서 뇌에 테크닉들을 때려 박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하지 않았는가!


내가 수학과 관련된 연구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에서 수학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면 너무나도 아쉬운 얘기들이 많다. 어렵고, 지루하고,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다 보니 든 생각은, 나는 다음에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는 친절하게 수학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좋은 수학책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역사적이면서도, 좋은 예시들을 들어가면서, 서서히 사람들이 수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면서, 종래에는 이 것을 당장이라도 응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즐거운 수학책. AI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되었든, 순수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든, 그냥 교양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든, 수학으로부터 '생각의 개념화'를 중심으로.


- Chat GPT, Gemini, Claude 등등의 생성형 AI들의 성능은 높아져가는데, 이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예전부터 나오는 'AI에 의한 생성물'에 대한 내용이라던지, 'AI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학업 약화'등. 최근 두 가지 일이 떠오른다.


한 가지는 내가 논문을 작성하면서 생각이 든 것으로, AI에게 그냥 '이런저런 내용을 담은 문구를 던져줘'하는 것과, '내가 이러저러하게 작성을 했는데, 문법과 스타일을 맞춰줘'를 비교를 해보았는데, 확실히 후자가 낫다. 물론, '이러 저런 내용을 담은 문구를 던져줘'라고 해서 나온 답변은 절대로 논문에 넣지 않는다. 그건 진짜 내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능이 좋아지다 보니 옛날에 비해서 좀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던져주는데,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거리를 좁힐 수가 없다. 내가 작성한 것을 고쳐주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만족스럽다. 이전에는 그냥 문법만 딱 고쳐주고, 단어 몇 개 고쳐주고 하는데, 단수 복수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고, 단어를 옛날에는 비슷한 의미면 거의 똑같은 단어, 잘 쓰지 않는 단어를 때려 박다 보니 누가 봐도 '아 여기는 AI로 처리했네'라는 게 보일 수준이었는데, 요즘에는 훨씬 자연스럽다. '이 단어는 이런 의미로 보통 쓰이는데, 보통 이런 연구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하면서 제안을 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친구가 뭔가 새로운 문장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부터는 그 문장은 누가 봐도 AI가 쓴 문장 같다. 이게 진짜 티가 많이 난다.


'AI에 의한 생성물'은, 내가 만족할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잘 작성을 해야 한다. 개떡 같은 문장이라도, 일단 내가 작성을 해놔야 이 친구가 자연스레 잘 처리하지, 아예 처음부터 몇 가지 단어 툭 던져놓고 생성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건 내 것이 아니더라.


다른 한 가지는, 학생들이 과제를 위해서 사용을 하는 것을 봤었던 일이었다. 물론 이 과제는 학생들이 얼마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제라 점수에 영향이 가지 않는 과제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 과제를 풀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웬걸, 문제를 박아 넣는 친구들도 종종 보이곤 했다.


물론 문제를 풀어주겠지. 그런데 그게 과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는 것은 맞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것이 있다. 예로 들어서, 'cos^2x + sin^2x =1이라는 것을 증명하세요'라는 문제가 있다고 치자.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면, 어떤 것부터 질문해야 할까? 'cosx 하고 sinx가 뭐지?'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더 뒤로 가면, '^2'는 무슨 의미일까?를 질문하지 않을까 싶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생기면,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곳까지 가본다. 'cosx와 sinx가 뭐지?' 등등. 그렇게 질문을 순차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잘못된 길로 들어갈 때가 있긴 하다. 증명을 적거나, 문제를 풀다 보면 막다른 길에 막힐 때가 있다. 그러면 검산을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방법을 탐색하거나, 그것을 질문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은 정말로, 학생들이던 우리 던 귀중한 경험이다. 우리는 '^2'의 의미를 이해하고, 'cosx와 sinx'의 의미를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식을 전개하면서 얻어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어낸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cos^2x + sin^2x = 1을 증명을 어떻게 해?'라고 물어버리는 순간, 그런 시간은 다 날아간다.


생성형 AI의 의미 있는 사용은, 사용자와 생성형 AI 간의 핑퐁이라고 생각한다. 생성형 AI는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서, 최소한 답변을 하는 그 이유를 말한다. 그것이 설령 할루시네이션이더라도. 그러나 좋은 질문이 있어야, 좋은 답변을 하고, 우리는 그에 반응하여 좀 더 일을 의미 있게 진행하고, 새로운 것을 또 얻을 수 있고 하다. 뭔가 말이 싱겁게 끝나긴 했는데... 그렇다.


- 무에서 유를 얻고, 그 유의 끝에서 무를 다시 바라보고, 그로부터 더 풍부한 유를 얻고, 거기서 다시 더 거대한 무를 바라보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절대적인 진리는 단 하나,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 내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명언이 있다. 힐베르트의 명언.

'Wir mussen wissen, wir werden wis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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