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꼬여 있는 밧줄을 자르지 않고 하나씩 풀어내는 것
이번 주 금요일에 연구실 내에서 랩 미팅이 있었다. 랩 미팅의 주제는 연구실 인원이 각자 10분씩 현재까지 했었던 일과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발표를 위해서 전날 밤에 필요한 내용들을 적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내용들도 적고, 지금 확정된 일정도 적고, 교수님이 제안해 주셨던 연구와 내가 생각하는 이후에 할만한 연구들을 적고... 맙소사. 너무 많다. 지금까지 해왔던 내용들은, 연구가 완료된 논문 네 편에 대해서 작성하는 것이었고,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며, 확정된 일정도 2월 달에 굉장히 몰려있는데 거기다가 영어 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이후에 할 후속 연구들은 주제가 6개나 되는데, 거의 모든 연구 주제들이 서로 관련된 부분이 없다!
작성을 하고 난 뒤, 나는 문뜩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해야 될 게 너무나 많이 쌓여있는데, 혼자서 쳐내기에는 너무 많다!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날 때마다 여기저기 막 작성해 뒀었는데, 막상 이렇게 모아두니 너무나 많다. 순간 공포가 나를 덮쳐왔다.
'작성 중인 논문들도 완료되지 않았고, 이후에 해야 할 것들도 너무 많은데, 거기다가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참가하려고 영어 공부까지 해야 한다고? 이거 말이나 되나?'
그래서 부끄럽게도, 처음에는 나의 연구실 동료에게 징징거렸다. '이거 말이 안 돼요.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이건 불가능해요.' 그러면서 절망하고 있었다. '이 것들을 다 한꺼번에 진행한다고? 그러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러다가 해외 연수는 제대로 갈 수는 있을까? 후속 연구들도 역시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걸?'
그러나 이런 압박 때문에 내가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이전에 나였다면 그냥 양 손들고 놓아버렸을 것이다. 스리슬쩍 후속 연구들 수도 줄이고, 논문도 한 두 개정도 써두고 나머지는 또 유기했을 것이다(정말 무책임한 나 자신...).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나는 그렇게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더 이상 옛날처럼 어리광 부리면서 살지 말자'다. 옛날에는 그냥 이렇게 꼬인 밧줄들을 마주하였을 때, 밧줄들을 잘라버리고 모른 채 했다. 당장의 압박감에서 해쳐 나오려고. 그러나 나는 몇 번 그렇게 하면서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경험해 봤다. 그렇기에, 이번은 다르다. 서른이 되면서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결과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 작성 중인 지옥에서 온 대학원생 시리즈다). 내가 여기서 또 밧줄을 잘라버리면, 그 밧줄들은 쓸모가 없어지고, 나는 그 밧줄들을 이용해서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이렇게 계속 무책임하게 살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미래를 약속할 수 있나. 결혼은 어떻게 하고, 또 직업은 어떻게 가지려나. 만약에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는 내가 어떤 것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잠을 잔 뒤, 다음 날 랩 미팅 하기 전에 나의 발표 자료를 발표용 컴퓨터에 옮기면서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어제는 공포에 휩싸여서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한 것은 아닌가, 나는 살 길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교수님께서도 지금 일정이 얼마나 빡빡한지 이해해주셨기도 했고, 또한 내가 준비했던 후속 연구들을 간단히 발표하면서 머릿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했고, 혼자서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실 동료들과 논의하면서 같이 몇몇 연구들은 같이 해가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살면서 자주 꼬여있는 밧줄들을 맞이한다. 물론 최고의 방법은 애초에 안 꼬이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꼬여져 있는 경우도 있고, 타의로 꼬여버릴 때가 있다.
실제로 무언가가 꼬여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여러분들도 경험해 봤음직한 일일 것이다. 옛날에 유선 이어폰을 쓰던 시절, 그냥 아무렇게나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쓰려고 할 때 엉켜져 있던 경험, 혹은 목걸이를 어디다가 내려두었다가 다시 끼려고 할 때 엉켜있던 경험. 그렇다고 온 힘으로 무작정 뜯어내면, 혹은 잘라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이어폰은 다시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할 거고, 목걸이의 도금은 다 벗겨져서 보기 흉하게 되거나 못쓰게 될 것이라는 걸.
이와 마찬가지로 꼬여있는 밧줄을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는 풀어야 한다. 잘 풀어내는 것은 시간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하다. 물론 정말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자를 필요가 있긴 하다. 그러나 중요한 밧줄들까지 모두 자를 수는 없다. 나의 경우에는,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연단위 계획'과 '월단위 계획'을 설정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꼬인 밧줄을 풀어낼 계획을 하고, 결국에는 마음속에 있던 공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꾸게 되었다(물론, 행동을 할 것이다. 나는 해내고 말 것이다).
무작정 꼬인 밧줄을 자른다는 선택은 우리에게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것은 꼬인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에 기인하는 것 같고, 또한 나는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에 반해, 꼬인 것을 푸는 것은 현실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꼬인 밧줄을 그냥 단번에 잘라서 해결하겠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건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생각과 같다. 밧줄을 풀어내는 행동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쓸모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왜 지옥 속에서 자신이 탈출할 수 있는 밧줄을 잘라내기만 하는가? 중요한 밧줄들을 잘라가면서, 지옥 속에서 계속 살고 싶은가? 왜 꼬여있는 밧줄을 보고, 그것이 내 목을 조를 고문 도구로만 보려고 하는가? 나는 반드시 탈출할 거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에게 내던져진 꼬인 밧줄을 반드시 풀어서, 다른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음 장소로 반드시 넘어갈 것이다. 여기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