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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Sep 16. 2020

락손스님에 대한 소고






  학교 축제를 이틀 앞둔 날, 희정은 격한 연습으로 손가락에 '봉와직염'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에 걸려 기타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축제에서 만큼은 꼭 메탈리카를 하겠다며 무리하더니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아봤다. 희정 옆에는 노숙자 같은 아저씨가 긴장한 듯 서있다.

 

  "그냥 편하게 락손이라고 불러주시오."

 

  미안하지만, 전혀 편하지 않았다. 나는 희정을 복도로 끌고 간 다음 어쩌자고 저런 사람을 데려왔냐고 타박했다. 


  "노숙자 맞어. 노숙자 맞는데, 기타 봤어? 깁슨이야 깁슨, 팔면 반값만 받아도 이백 이라고. 안 파는 거 보면 뭔가 있어... 락 소울 같은 거. 가끔 공연도 한대 터미널에서." 

  "짭이겠지, 그리고 그건 공연이 아니라 구걸이야." 


  반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음악실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 코드를 잡더니 희정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묵직한 기타 리프가 들려온다. 희정은 나에게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진은 락손의 봉두난발을 포니테일로 묶어주었다. 키보드를 치는 손이 길고 예쁘다. 아저씨도 더러웠던 첫인상과 달리 말끔하고 제법 잘생겨 보였다. 


  "근데 락손 아저씨는 기타도 엄청 잘 치면서 왜 노숙자로 살아요?"

  "희정양은 기타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 뭔 줄 아시오?"

  "스위핑? 투핸드 탭핑?"

  "돈 벌기라오."


   희정은 시무룩해서는 내게 기댔다. 내 손이 퉁퉁 부운 희정의 손에 겹쳐진다. 공연이 두 시간 남았다. 무대 세팅이 끝나고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락손은 무리 없이 곡들을 소화했다. 연습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대단한 능력이었다. 두 곡이 끝나고 마지막 메탈리카의 차례가 되었을 때 락손은 스탠딩 마이크를 요구했다. 급하게 축제 사회자의 마이크가 락손 앞에 놓인다. 내가 표정과 손짓으로 '뭐하는 짓이냐'고 어필하자 락손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곤 멋대로 곡을 시작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빙의였다. 우리의 목소리를 가볍게 씹어 먹고 묵직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제임스 헷필드'그 자체다. 기타 개인기 파트에서는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드럼 채를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락손은 포니테일을 풀어헤쳤다. 400명이 넘는 여고생들의 무서운 비명이 들려왔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락손을 보지 못했다.



  락손을 다시 만난 곳은 경주 불국사였다. 점심시간, 이번이 네 번째 인지 다섯 번째 인지를 헤아리며 하릴없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법당 앞에서 염주를 굴리며 산책을 하던 스님이 나를 알은체해왔다.


  "그동안 잘 지내셨오?"

  "락손? 어쩌다가 스님이..."

  "맞소이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빡빡 깎은 락손의 머리가 한낮의 햇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바람에 이야기에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어떤 한을 풀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속세의 미련을 버렸다나? 락손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그럼 된 거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소리가 들렸다. 락손은 합장하곤 허리를 숙인다. 나도 똑같이 인사하곤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갔다.


  버스에 타기 전, 멀리서 목탁소리가 들렸다. 엇박자가 묘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메탈리카 'Enter Sandman'의 드럼 비트다. 불경 외는 소리가 걸걸하게 들려왔다. '파-'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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