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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l 03. 2021

큐플릭스 초단편 - 천국의 악마들

(옴니버스/초단편/SF)

  


  고대하던 천국에 발을 들인 김착한씨는 할 말을 잃었다. 파란 하늘 구름 위에 앉은 천사가 하프라도 튕기고 있을 줄 알았던 천국에는 손바닥만 한 박쥐 날개를 단 우스꽝 스러운 악마들이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쌈박질을 해대는가 하면, 현대적이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도시가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넋이 나갔군."


  그를 알아본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주변에서 '나도 처음엔 저랬었지' '정말 웃기는 표정이군.'하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지옥인가요?"


  그가 물었다.

  "아니 천국이지!"


  사람들이 말했다.​


*​


  나악당씨는 뜻밖에 지옥의 모습에 크게 안도했다. 튀김 솥과 끓는 유황불, 낫과 삼지창을 든 악마들을 대신에 준수한 용모의 천사들이 서로 재잘거리며 하프를 튕겼다. 새파란 하늘에 그림처럼 걸려있는 천사들의 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여기는 천국이야!”


  그가 외쳤다.​


  "아니야 여긴 지옥이야."


  사람들이 말했다.​


*​


  천국의 악마들은 살벌한 악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 뼘만 한 박쥐날개에 곱사등이 난쟁이, 일그러진 얼굴은 익살스러웠고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처럼 아둔하고 한편으론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대개 서로 싸우거나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짓을 할 뿐이었다. 천국의 주민들에게 그것은 훌륭한 유희거리였다.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과 모든 것이 제공되는 가운데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지, 또한 얼마나 우월한지 악마들을 보면서 재잘거렸고 악마들을 보면서 느꼈다.

  김착한씨는 생각했다. 이곳의 천사는 바로 우리라고.​


*​


  천사들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이 없었다. 외출을 할 때면 그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펴고 공중을 한 바퀴 활강하다가 적당한 구름에 걸터앉아 하프를 튕기든지 재잘거리던지 하는 게 그들의 일과였다. 그들도 역시 악마처럼 지옥의 주민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어두워질 때면 그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집으로 향했고 지옥의 주민들은 지상의 그저 그런 아파트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옥의 주민들은 그런 평범한 일상에 염증을 느꼈다. 그들은 누구나 천사들을 선망했고 천사를 사귀거나, 천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간혹 천사들이 실수로 떨어뜨린 하프나 장신구를 서로 갖겠다고 다투었다. 오랜 지옥 생활에 정신이 나간 녀석 하나는 스스로 모형 날개를 만들고 콘크리트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나악당씨는 생각했다.


  '이곳보다 끔찍한 지옥은 없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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