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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ul 02. 2021

큐플릭스 초단편 - 거꾸로 매달린 의자

(옴니버스/초단편/sf)


  ‘이럴 리가 없다.’


  서향 아파트에 아침부터 해가 들리 없었다. 창문에 해가 드는 것은 대낮과 저녁뿐, 아침 햇살과는 인연이 없었다. 나는 숙취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베란다를 응시했다. 두 가지 추론을 해보았다. 첫째 해가 서쪽에서 떴다. 둘째 아파트가 동향으로 위치를 바꿨다. 둘 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라도 나올까 싶어 소파에 누운 채로 뉴스에 채널을 맞췄다. 큼지막한 자막이 눈에 띄었다. ‘태양 오늘 서쪽에서 떠’라는, 만우절 장난 같은 문구. K대학 천문학 교수를 비롯한 남녀 아나운서가 진지한 분위기에서 말을 주고받았다.


  “교수님 말씀대로 라면, 지동설에 오류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교수는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이 담긴 역법서와 조선 세종대의 칠정산, 고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역법서와 미국 나사에서 배포한 현대 역법서를 비교 대조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읊어댔다. 인간은 대기권 밖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며, 과거 역법서나 현대 역법서나 온전히 신뢰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 이어졌다. 


  “코페르니쿠스는 간결함을 신봉하는 사이비 천문학자였습니다. 지구를 중심에 놓게 되면 천체의 움직임이 기계식 시계에 비할만큼 복잡해지는 데 반해 태양을 중심에 놓게 되면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간결한 원을 그리게 됨으로써 보기 좋은 모양이 되긴 합니다만,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뜬 것은 그런 예측지 전적으로 빗나갔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천동설을 주장하시는 건가요?”

  단발의 아나운서가 교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다만, 최초의 역법서인 프로톨레마이오스 역법서에는 행성이 거꾸로 움직이는 행성역진 현상이 명백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칠정산에도 태양은 아니지만, 화성의 역진 현상이 나타나 있으니 참고할만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레 갈증이 몰려왔다.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옷에서 톡 쏘는 냄새가 났다. 생수를 들이켜고 세수를 했다. 화장실 안이라 TV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와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다 말리고 소파에 앉을 때까지 해는 쨍쨍했고 TV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해댈 뿐이었다. 나는 TV를 끄고 다시 소파에 널브러졌다.


  TV를 끄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러다 내일 당장 중력이 역전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라 말인가, 나는 만일을 대비해 천장에 의자 하나를 붙여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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