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에 대한 단상
'우울한 드로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우울함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설명하는 자리였고, 그것을 5주 정도 진행하면서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비교와 경쟁이 당연한 사회에서 외로움과 우울은 현대인의 숙명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마구 흔들릴 때, 우울한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슬픔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유격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진주조개는 자신의 몸에 들어온 이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체액을 내뿜어 적극적으로 이물질을 감싼다고 한다. 우울한 그림을 그리고, 우울한 음악을 듣고, 멜랑꼴리한 소설을 읽는 것이 슬픔을 대처하는 완벽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문득 이물질처럼 침입해 들어와 나에게 상처를 주는 우울과 슬픔을 더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소설은 기존의 가치를 인정하되, 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아주 미약한 익명의 시각에서 출발해 끝내 완수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약자의 권리, 가려진 고통과 슬픔, 소수자의 고충을 잘 드러내 보이는 장르 중 하나다. 내가 쓴, 내가 쓸 소설도 그런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완벽한 대처법은 아닐지라도 슬픔이나 고통을 직면하고 이해하는 것은 내 감정을 소외시키지 않고 보듬어 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