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에 대한 사후 약방문

자아에 대한 단상

by 허블

나는 자기 연민이 강한 사람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굴 때가 많았다. 물론 내가 예민하게 군다고 문제가 해결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무릎을 망치로 때리면 다리가 반사적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처럼 '나도 어쩔 수 없는' 형태로 무언가 이루어지고 사후 약방문식으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게 사건이 되었든, 개인적인 소회나 감정이 되었든 불쾌한 잔상이 남았다. 자기 연민이나 나아가 자기혐오는 초라한 나 자신을 그 자체로 축약해 놓은 것만 같았다. 거기에는 항상 멸칭이 붙었다. 아싸, 자의식 과잉, 부적응, XX충과 같은 멸칭들은 너무도 간단하게 나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고착하고, 사람을 병들게 만들었다.


붙었던 멸칭 중 타당성이 있는 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초라한 나는 내가 아니라는 식의 자기부정은 자기 꼬리를 문 뱀처럼 멍청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 독을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설령 그것이 과거의 어떤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문예창작학과 재학 시절 전후 소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50년, 60년대에는 사실상 '피난'소설이고, 7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전투'장면이 묘사되기 시작한다. 70년대 한국전쟁을 다루고 묘사한 소설가 중 전쟁에 직접 참여하였거나, 전투를 경험했던 사람은 없다. 실제 전투를 경험했던 작가는 죽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사건이 드러나고 표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트라우마가 없거나, 극복한 상태에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러니까 말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는 극복을 해낸 상태라는 점이 나는 썩 마음에 든다. 죽은 자기 연민 앞에 약통쯤 들고 가는 수고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이전 20화우울한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