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에 대한 단상
번아웃은 내가 노력했던 일이 전적으로 부정당했을 때 느끼는 허무에서 발생한다.
자녀에게 인생을 올인한 어머니, 회사에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하다 정년 퇴임한 회사원, 그들은 노력이 좌절되는 허무를 느낀 후로는 이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생'에 대해서 질문하면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녀가..' '회사가..'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 네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고 각자가 느끼는 공허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직장에서, 대인관계에서, 연인 관계에서 그동안 들였던 노력이 돌연 허무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는지도 되새겨 보기도 했다. 그러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대응 방법을 생각해 보니
1. 모든 일이나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허무를 각오하는 방법
2. 허무가 예상된다면 그 일이나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 방법
정도가 떠올랐다. 1번은 꽤나 매력적이고 2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태도로 살아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관계를 맺든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기도 했다. 연인이라도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을 우선으로 둔다면, 그건 상대방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혹여나 헤어졌을 때, 상대도 나도 허무감에 빠져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잠깐 슬퍼하되 자신의 일상을 되찾아 움직여야 한다. 내 중심을 지키고 아니라고 생각되었을 때 놓을 줄 아는 것도 포기가 아닌 적극적인 선택이다.
일, 자아실현에서 오는 허무도 비슷하다.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작가로서 느끼는 번아웃과 허무에 앞서 '실망감을 견디는 것까지가 실존'이라고 생각하며 투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 존중이 필요한 친밀한 관계와는 달리 내가 중심이 되어 욕심껏 들이받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번아웃도 허무도 조금은 견딜만했다.
하이데거의 철학 중에는 '죽음에의 선주'라는 개념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회피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나타낸다. 끝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며 우리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의미와 목적을 자각하게 한다고 했다.
만화에서는 '남는 건 역시 부동산'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치열하게 더 생각하고 나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독려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