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도 긴 시(時)선
개인적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꿈 중에 하나가 바로 애완 동물을 키우는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에 키우지는 못하지만, 가끔 고양이와 강아지 둘 중에 하나를 키울 수 있다면 무엇을 키울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곤 한다.
어떨 때에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반겨주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가끔 다가와 포근함을 주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을 보면 결국 언젠가는 고양이를 키우게 되지 않을까 한다. 불러도 다가오지 않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을 쓰다듬으면 발톱을 세우고 하악질을 하는 동물이긴 해도, 고양이만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다가 어떻게 아는지 몰라도 힘들 때 다가와 부비적거리며 위안을 주는 것이다.
내가 애정하는 사람도 그렇다. 마냥 항상 잘해주는 사람보다는, 평소에는 무심한 듯 지내다가도 정말 힘든 순간에 개인적으로 연락하여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물론, 언제나 잘해주는 사람의 마음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평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건넨 한 번의 위로는 확실히 더 큰 울림을 가져다 준다.
흔히 츤데레라고 불리는 존재들. 때로는 매몰차게 느껴지기도 하고 전혀 애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실은 너무나 애정하기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만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는 존재들. 그들이 건네는 애정에는 존재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나는 그래서 그런 존재를 사랑한다.
그래서일까. 학생들 앞에 서는 교사인 나는 자꾸만 츤데레가 되어 가는 듯하다. 특히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에게는 츤데레적인 모습이 더욱 자주 나온다. 학생들을 애정하지만, 일정한 선을 지켜야 하므로 오히려 매정해지고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다그치게 된다. 물론 진실된 고민을 토로하는 학생에게는 먼저 다가가 물어보고 응원을 건네기도 한다.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말의 숨은 뜻은 항상 한 발짝 뒤에서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다가가겠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진심으로 애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기꺼이 고양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