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떡국

호준

by 콰드로페니아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기에 사는 동안 수많은 음식을 먹는다. 무언가 먹을 수 있다는 말은 내가 잘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처럼 먹는다는 말은 삶과 밀접하게 관련있기 때문인지 음식만이 아니라 다른 표현에도 관용적으로 쓰인다. 욕도 ‘먹고’ 뇌물도 ‘먹는다.’ 물론 나이도 ‘먹는다.’


어김없이 새해는 밝았고 스물다섯이 되었다. 아니, 스물셋일 수도 있다. 한국은 나이를 세는 법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살을 붙이고, 새해가 될 때마다 공평하게 모두 동시에 한 살을 먹는다. 그런데 이 나이 말고 다른 나이가 하나 더 있다. ‘만 나이’이다. ‘만 나이’는 생일을 기준으로 삼는다. 일상에서 한국식 나이를 사용하지만 행정상으로 만 나이가 쓰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나이가 두 개이다.


나이를 먹는 기준은 세 가지이다. 새해, 생일, 그리고 떡국. 떡국은 독특하다. 한국은 설날에 (또는 새해 첫 날에) 떡국을 먹는 풍습이 있다. 떡국을 먹으면서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다는 말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떡국과 나이는 풍습 이외에 별 다른 접점이 없다. 떡국을 기준으로 나이가 바뀌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떡국과 나이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둘을 연관지어 생각했다. 그때는 나이 먹는 일이 참 즐거웠다. 나이를 먹고 학년이 바뀌며 어른들은 나를 조금씩 어른처럼 대했다.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세뱃돈도 더 주셨다. 중학생이 되자 아버지는 휴대전화를 사주셨다. 그 휴대전화로 게임 캐시를 충전해보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는 느껴보지 못한 소소한 기쁨이었다. 떡국은 참 맛있는 명절 음식이었다. 큰아버지가 준 세뱃돈을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넣어두고 한 숟가락 떠먹는 떡국은 달달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떡국이 달갑지 않았다. 아마 나이 먹는 일이 부담스러워졌을 때부터였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젊어지고 싶다는 어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늘어나는 나이가 만드는 문제는 내가 노력한다면 좁힐 수 있는 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았다. 숫자와 함께 많은 부담과 책임을 가져왔다. 나이가 들수록 아직 해결하지 못한 군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먹고 사는 일이 버거워진 부모님은 내가 빠르게 경제적 독립을 이루길 바라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늘어나는 나이만큼 나에게 바라는 게 많아졌다.


사실 떡국은 잘못이 없다. 떡국을 먹지 않는다고 나이를 덜 먹는 일은 없다. 그저 나이와 관련된 전통이 떡국 안에 녹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떡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을 때면 어른들의 잔소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떡국을 씁쓸하게 만든다. 게다가 몇 푼의 세뱃돈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면 떡국이 무슨 맛이었는지 조차도 잊어버리고 만다.


떡국 한 그릇에 참 많은 것이 담겼다. 걱정, 책임, 부담…. 그 모든 것이 말간 국물 위로 떠오른다. 언제쯤 떡국을 반갑게 먹을 수 있을까.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어깨 위 짐들은 떡국 먹는 날에 무거운 책임만을 맛보게 한다.



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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