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허전한

승준

by 콰드로페니아


항암 치료 부작용 중 하나는 심장 기능 저하이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가족들은 전혀 몰랐다. 엄마는 치료 전에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항암 치료를 안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이윽고 나는 쓴 약을 삼키는 아이처럼 고개를 돌렸다. 약을 먹기 때문에 더 아픈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엄마의 항암치료가 그렇다. 나는 아프지도 않고 약을 먹지도 않은 건강한 사람인데도,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았다.


오후 7시에서 7시 20분까지가 정해진 면회 시간이었다. 첫 번째 자동문 앞에서 면회자 명찰을 받고, 두 개의 자동문을 더 지나 심장병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스릴러 영화에서 나올 법한 좁은 고문실과 하얀 병동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침상의 정면으로 뻥 뚫린 투명한 유리벽과 그 위에 조그맣게 달린 TV. 침대 왼편에 놓인 이동식 변기. 편한 옷을 입고 온 내가 이 공간에서 제일 이질적인 사람이었다. 간호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창문 안으로 나를 흘깃 보고 갔다. ‘나를 본 건가? 아니면 기계의 수치를 본 건가?’


왼쪽에는 투여하고 있는 약들이 기계를 통해 자신의 소수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심박수, 혈압 등의 수치를 보여주는 기계가 있다. 세 자리 수를 넘기는 게 거의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많이 늙었나?' 라는 질문보다 '엄마는 세 자리 수 아래로 내려간 수치만큼 아픈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먼저 떠올랐다. 낯설었다. 새벽부터 반찬을 준비하고, 된장이나 간장도 직접 집에서 담그는 노력을 보였던 엄마가 흰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엄마는 노력을 천천히 포기하면서, 늙기 전에 아파 버렸다.


- 밥은? 잘 먹어?

- 맛이 하나도 없어.


엄마는 내가 챙겨온 딸기 몇 점을 집어 먹었지만 다른 것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실내에 서있는 기계들의 틈바구니 속 엄마가 뭐라도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기적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딸기라도 드신 게 어디야.' 이런 식으로 안심하는 내가 얼마나 무서운 상황을 머릿속으로 가정하고 있었는지 자각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 ‘당연히 딸기를 못 드실 거라고 생각했나? 영화에서처럼 딸기 한 알 먹고 구토라도 하실 거라고 생각했나?’ ……잘 먹어야 회복할 수 있다. 몸이 쓸 연료가 있어야 혈압도, 심장 기능도 예전처럼 건강해질 것이다. 병식이라도 잘 챙겨먹으라고 말씀드리고 나니 면회 시간이 끝나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동생과 나, 아버지 세 명은 엄마 없이 집밥을 차려먹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 아마 최선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동생은 면회 때 엄마에게 주기 위해 찌개를 끓였고 아버지는 쌀밥을 차려두거나 냉동식품 등을 사오셨다. 나는 냉장고에 쌓인 식재료들의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1인분으로 조리해 먹었다. 엄마 없는 집밥은 조금씩 모자란 맛이 났다. 계란찜은 싱겁고 찌개는 깊은 맛이 없었다. 밥은 너무 질거나 설익었다. 내가 만든 볶음 요리에서는 마늘 향도, 파 향도 엄마의 볶음 요리처럼 나지 않았다.


엄마가 된장을 담그는 중에 입원을 하시는 바람에, 동생이 베란다에 있던 된장을 관리했었다. 비가 오면 베란다 창문을 닫아주고, 햇살 아래로 항아리를 옮겨주거나, 며칠 간격으로 항아리 안에 들어있는 메주 위치를 바꿔주어야 했다. 당장 먹을 된장은 있었지만 미리 준비해두려는 엄마의 세심한 마음이 엿보였다. 아빠가 엄마 병문안을 다녀온 날 밤에, 엄마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된장찌개가 준비되는 동안 계란도 세 알 정도 부쳤고 엄마가 담근 김치도 꺼냈다. 김치나 된장은 바뀐 게 없었지만, 손이 바뀌어서 그랬는지 맛이 달랐다. ‘맛이 없다’가 아니라 맛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생소했다. 엄마가 해둔 된장이나 김치가 다 떨어지면 그 달라진 맛이 앞으로 내 맛의 기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밥의 수명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엄마보다 아주 조금 더 오래 살게 될까. 앞으로 내가 먹게 될 된장과 김치,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집밥에서 계속 엄마의 흔적이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허전하다.


며칠 뒤에, 가게 일을 마치고 다시 병문안을 갔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엄마는 예전보다 혈색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점심을 방금 전에 드셨다고 했다.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잘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혈압은 아직 정상 수치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외부 음식을 조금씩 먹으면서 식욕도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엄마가 집밥은 잘 먹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럭저럭 잘 먹고 있다고 했다. 혼자서도 요리 해먹고 있으니 걱정마시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만 하시라고.


엄마의 생각이 궁금했다. 아무 맛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병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버텼는지. 딸이 서투른 솜씨로 끓인 김치찌개는 정말 맛이 있어서 다 먹은 건지. 아니면 남기기가 미안해서 억지로 먹은 건지. 당신이 하지 않은 집밥에 적응해버린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이 밉지는 않은지. 그리고 지금은 뭐가 제일 먹고 싶은지.



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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