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나는 늦는 걸 싫어한다. 남들이 늦는 건 그러려니 넘길 수 있지만 유독 내가 늦는 건 견디기 어렵다. ‘나의 늦지 않음’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각 여부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다. 지각이 예상되는 날에는 한 시간도 전에 메세지를 남겨 놓는다. ‘10분 정도 늦습니다. 죄송합니다.’ 메세지를 남겨둔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늦지 않는 법이 뭘까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조금만 더 미리 준비하세요.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늦지 않도록 넉넉하게. 이렇게나 나의 늦음에 예민한 나지만, 정작 나는 지각 인생을 살고 있다. 이미 인생에 지각을 하고 있다 생각하니 나의 다른 지각에 그토록 예민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재수를 한 탓에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입학을 했다. 그때만 해도 1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도 늦게 다녀왔고, 소프트웨어학과를 복수 전공한 탓에 5학년을 꽉 채워 학교를 다녔다. 졸업이 늦어지니 취업이 이어서 늦어지는 건 당연했다. 이렇게 늦어지는 일이 쌓이다보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 중 나의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지각은 졸업 지각과 취업 지각이었다. 아마 가장 눈 앞에 둔 지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거나(나는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는데!) 벌써 각자의 분야에서 2-3년차 경력을 쌓고 있었다. 앞서 말한 지각들이 쌓이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는 왕지각을 할 것이 뻔했다. 지각을 하지 않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왜인지 인생에는 좀처럼 적용이 되질 않았다. 친구들에 비해 조금씩 늦어지면서 나는 내 인생의 지각을 예감했다. 친구와의 약속에 늦으면 미리 메세지를 보내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인생에 늦으면 나는 누구에게 메세지를 보내야하나.
복수 전공을 한 소프트웨어학과에서는 코딩을 배웠다. 코드를 작성해서 만들어낸 프로그램의 실행 원리는 간단하다. 입력을 하면 정해진 일을 수행하고 결과를 출력한다. 조금이라도 다른 입력을 한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출력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작동 방식은 인간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는 주전공인 철학과 맞물려 독특한 사고 습관을 만들었다. 나는 내가 왜 늦고 있는지를 프로그램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는 또래에 비해 늦고 있는가?] 입력. [당연히 늦고 있다. 친구들이 경력을 쌓고 있는 와중에도 취업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출력. 너무나도 명확한 상황이라 가슴 한켠이 아렸다. [그럼 나는 왜 늦고 있지?] 입력. [복수 전공을 하겠다고 욕심을 낸 탓에 졸업 요건을 맞추기 쉽지 않았고, 취업 준비 또한 전혀 되지 않아 아직도 공부할 것이 산더미니까.] 출력. 어휴... 막막해 죽겠네. 내가 ‘얼마나’, ‘왜’ 늦고 있는지를 따지고 있자니 끝도 없을 것만 같았다. 입력을 조금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래밍은 입력에 따라 출력이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니.
보다 근본적인 입력을 해보는건 어떨까? [늦은 게 잘못된 건가?] 입력. 머리가 복잡해졌다. 막연히 뒤쳐지는 걸 잘못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지각에는 매번 이유가 있었다. 낯선 전공의 진도를 쫓아가기 위해 몇 배의 시간을 들여야 했고, 공부하다 어려운 문제를 마주해도 물어볼 사람이 없어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야 했다. 그렇게 공부하고도 문제를 풀지 못해 백지 답안지를 내고 나올 때는 분해서 벽이라도 치고 싶었다. 지각을 하지 않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모르는 것을 몸으로 부딪혀 알아내는 방법을 터득했고,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간이 들었더라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따져보면 지각에도 좋은 구석이 있을지도? 다시 입력. [늦은 게 잘못된 건가?] 마지막 출력. [단순히 늦었다는 것만으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음.]
몇 달 전, 무심코 김치 냉장고를 열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냉장고에 자리가 부족해 음료를 김치 냉장고에 넣어둔게 화근이었다. 순식간에 퍼진 시큼한 냄새가 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잔뜩 쉬어버린 신김치 냄새였다. 예상치 못한 향이라 자칫 구역질을 할 뻔했다. 엄마는 겨울에 담가둔 김치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적당한 때에 다 먹지 못하고 남아버렸다고 말했다. 때를 놓친 김치는 조바심이 난 듯 신 냄새를 뿜어대고 있었다. 식탁에 오를 준비가 되었다고, 더 늦으면 안된다고.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때를 놓친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았다. 나는 김치 냉장고의 문을 닫으며, 잔뜩 쉬어버린 김치가 어쩌면 나의 처지와 같다고 가만히 생각했다.
신김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알아보다 백종원 아저씨의 김치찌개 영상을 발견했다. 백종원은 영상에서 몇 번이나 강조하고 있었다. “제 레시피대로 했는데 맛이 없다고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거 문제는 거의 김치에요. 신 김치여야 돼요. 적당히 잘 익은 김치가 아닙니다? 꺼내보고 시큼할 정도로, 쉴 정도로 신 김치. 신 맛이 나야 김치찌개가 맛있습니다.” 나는 때를 놓쳐 지나치게 익어버린 신김치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지나치게 익어버린 때가 오히려 적당한 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지각은 정해져 있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허탈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얻어낸 나름의 답이었다. 그럼 이제 나는 뭘 해야하나? 어차피 적당히 익는 데에는 실패했으니, 그저 힘이 닿는데까지 시큼해질테다. 나의 시큼함이 오히려 자랑이 될 어느 때를 상상한다. 내 인생에 지각하는 것은 친구와 잡은 약속에 지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애써 나 자신에게 지각을 알리려 메세지를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애초에 인생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게 아니니까... 오늘도 나는 조금씩 익어간다. 은근한 신 냄새를 뿜어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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