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서평
# 오직 두 사람 : 매수자와 매도자
거상(巨商) 임상옥은 순조 시절 당대의 세도가인 호조판서 박종경이
"남대문에 출입하는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이나 된다고 보느냐?"라고 물었을 때,
"두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박종경이 그렇게 답한 연유를 묻자,
임상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대감에게 이익을 줄 사람과 해를 줄 사람, 즉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본다면 사실 이 거대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도 두 사람밖에 없다.
바로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 믿는 투자자와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 믿는 투자자이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언제나 투자자의 행동으로부터 발생하는데,
투자자가 금융시장을 움직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매수와 매도, 단 두 가지 행동뿐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은 단 두 사람,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 오직 두 심리 : 탐욕과 공포
그렇다면 사람들은 금융시장에서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이러한 욕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가격은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금융시장에 참여하여 돈을 벌려는 욕구는 바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에너지 그 자체이다. 중요한 점은 돈을 벌고자 하는 이 욕구라는 것이 합리적,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이며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변수는 기업 실적도 PMI 지수도 아닌, 탐욕과 공포로 대두되는 투자자들의 심리이다. 매수자는 자신이 산 가격보다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이라 기대하며, 반대로 매도자는 자신이 판 가격보다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라 기대한다. 시장에서 거래가 발생하는 그 순간, 두 가지의 상반된 심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발현된다.
탐욕과 공포는 투자자 심리의 양대 축이며, 금융시장에서 탐욕과 공포의 불균형이 발생할 때 시장은 움직인다. 즉, 금융시장은 탐욕과 공포에 대한 함수인 것이다. 따라서 어떤 누군가가 아주 정확한 이 함수의 형태를 알게 된다면, 그는 아주 쉽게 금융시장에서 떼돈을 벌어갈 수 있다. 물론 이 함수의 형태를 명백히 밝히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결국 만약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절대적 변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투자자의 행동을 일으키는 심리이다. 따라서 퀀트들이 말하는 금융시장의 여러 가지 팩터들의 밑바닥에도 당연히 인간의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언뜻 퀀트 투자, 퀀트 트레이딩이라는 것이 매우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 같아 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의 심리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퀀트들이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팩터는 인간의 심리가 창조해낸 패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퀀트는 시장 비효율성의 원인을 오히려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에서 찾는다. 퀀트가 찾는 패턴은 다름 아닌 투자자들의 행동이 만들어낸 패턴이기 때문이고, 투자자는 당연히 한낱 인간이기 때문이다.
# 위대한 트레이더들의 심리원칙
따라서 위대한 투자자, 그리고 위대한 트레이더들은 그 무엇보다 건강하고 확고한 그들만의 심리원칙을 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기본적 분석, 기술적 분석, 계량적 분석과 같은 투자와 트레이딩의 테크닉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금융시장의 본질적 동인이 언제나 심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 자신 또한 인간이기에 심리, 즉 원초적 본능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슴 깊이 새긴 채 불확실성의 점철된 의사결정의 장으로 뛰어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불확실성을 무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즉 현재에 집중해서 현재 시장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금융시장이 자신들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떠한 예측이나 기대도 하지 않는다. 시장의 본질은 불확실성 그 자체이므로 확률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손실을 리스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손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장기적으로 수익을 얻기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사업비용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리스크는 시장을 함부로 예측을 했을 때 자신들의 예측이 틀리게 될 리스크이다. 이것이 진정한 리스크인 이유는 예측은 기대를 낳게 되고 기대는 자신이 옳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게 되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예측이 진정으로 옳은 것이라면 그 반대의 케이스를 전혀 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측의 순간, 기대는 투자자에게 있어 '진실'이 된다. 설사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실이 아니더라도 믿음은 그 순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채가 된다. 그렇게 대다수의 투자자나 트레이더들은 '나는 알고 있다'라고 착각함으로써 예측을 통해 그들이 저지를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실수를 실제로 저지르게 된다.
일반인들이 투자나 트레이딩으로 꾸준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테크닉이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감정에 의해 심리가 휘말려 스스로 정한 투자의 원칙을 허물어 버리고 또다시 비이성적 의사결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시장은 투자자의 감정 상태를 여실히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 금융시장은 언제나 정보를 중립적으로 제공한다. 그 중립적 정보에 감정과 기분을 투영하는 것은 바로 투자자 자신일 뿐이다. 금융시장은 어떤 정보가 호재인지 악재인지를 절대로 판별하지 않는다. 투자자들의 인식은 자신들의 기대를 정보에 '투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 심리투자 불변의 법칙
이미 작고한 월스트리트 심리투자의 대부인 마크 더글라스의 저서 「심리투자 불변의 법칙(Trading in the Zone)」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트레이더와 투자자가 어떠한 심리상태 혹은 어떠한 정신상태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하여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마크 더글라스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빈 서판 이론, 투사 등 여러 인지심리학적 개념들을 사용하여 금융시장의 원초적 다이나믹스에 대해 서술해 내려간다. 대부분의 투자 고전들이 금융시장은 결국 인간의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사실적 관점에서만 주장해왔다면, 이 책은 '인간의 심리가 왜 그러한 방식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지'를 매우 깊게 파고든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이해해왔던 '금융시장과 인간 심리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부터 하나씩 하나씩 빌드업해나간다.
저자가 이러한 설명 방식을 취한 이유는 투자와 트레이딩의 영역에서 무엇보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만 아니라 특히 나 자산의 심리상태와 감정상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만이 불확실성 그 자체인 금융시장에서 자신의 자본을 지키고 나아가 꾸준한 수익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절대로 한 번 읽고 먼지가 켜켜이 쌓인 서가에 꽂아놓으면 안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언제나 눈에 잘 보이는 곳, 손에 잘 닿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야 한다. 금융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승리를 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다독하여 더글라스가 전하고자 하는 행간의 본질적 의미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아니 마땅히 그래야 할 의무를 우리에게 지우는 책이다.